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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을 네 개의 숫자로 나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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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유튜브에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봤다. 시작이 좋았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 사람을 네 개의 축으로 나누고 다시 숫자를 붙였다. 정치는 좌파와 우파, 젠더는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계급은 서민과 부유, 개방성은 개방과 전통. 이퀄리즘은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는 쪽이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말이었다. 각 축에는 다시 1에서 3까지 숫자가 붙어 그 성향이 얼마나 뚜렷한지를 표시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네 개의 단어와 네 개의 숫자가 된다.

 

권성민 PD는 이 방식이 MBTI와 닮았다고 했다. 익숙한 틀이니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기에는 편했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상대의 코드를 정확히 알아내면 그 사람을 탈락시킬 수도 있고, 그들 사이에는 공동체를 흔드는 임무를 받은 ‘불순분자’도 숨어 있었다.

 

사람을 정말 그렇게 분류할 수 있을까. 그 질문 때문에 계속 보게 됐다.

 

더구나 아는 얼굴도 있었다. ‘백곰’은 더불어민주당에서 활동했던 박성민이고, ‘슈퍼맨’은 국민의힘 정치인 김재섭이었다. 페미니즘 활동 경험이 있는 작가 하미나는 ‘하마’, 김나정은 ‘슈가’, 변호사 임현서는 ‘벤자민’, 유튜버 이승국은 ‘테드’였다. 그 밖에도 직업과 살아온 과정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들의 ‘생각’을 보게 된다. 백곰에게는 좌파·페미니즘·서민·개방이라는 코드가 붙었고, 반대편에는 보수 정치인 슈퍼맨이 있었다. 젠더 문제에서도 하마와 슈가는 꽤 다른 자리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궁금해진다. 저 사람들은 실제 사건을 만나면 어떻게 판단할까. 같은 문제를 두고 무엇을 먼저 볼까. 복지와 세금에서는 누가 부담을 먼저 말하고 누가 분배를 먼저 말할까. 젠더 갈등에서는 어디에 선을 그을까. 이주민이 들어오면 자신이 말해온 개방성과 실제 행동은 얼마나 겹칠까.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처음 붙여놓은 코드는 점점 설명력을 잃었다. 옳은 말을 한다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말을 많이 한다고 설득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별말 없이 표의 방향을 바꾸고, 누군가는 공동체를 말하면서 자기 몫도 챙긴다. 계산이 너무 선명해 야비하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도 있다.

 

연합도 생긴다. 누군가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정보를 감추고, 자신과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도 한다. 평화를 이야기하던 사람도 자기 생존이 걸리면 셈을 시작한다.

 

정치게임이 된다. 누구에게 표가 있는가. 누가 캐스팅보트를 쥐었는가. 누가 누구와 가까운가. 누가 다음에 위험한가. 실제로 백곰과 슈퍼맨의 종신 리더 선거에서는 11대 2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때부터 재미있었다. 사상보다 행동이 재미있었다.

 

생각이 같다고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다르다고 끝까지 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명분과 이해관계, 호감과 불신, 의리와 계산이 한 사람 안에서 섞였다. 그레이로 출연한 전민기는 방송이 끝난 뒤 자신이 했던 이른바 ‘정치질’을 사람의 욕망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 말이 흥미로웠다. 정치란 결국 사람의 욕망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니까.

 

오래 보고 있으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사람은 명분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욕망만으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생존을 계산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데도 누군가를 지킨다.

 

명분과 욕망은 좀처럼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더 커뮤니티》가 잘 잡아낸 것도 그 지점이었다.

 

권성민 PD가 처음 품었던 질문 역시 비슷했다. 온라인에서는 정치적 입장 하나만으로 상대 전체를 판단하고 쉽게 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한 공간에서 실제로 함께 살아도 그렇게 쉽게 상대를 밀어낼 수 있을까.

 

제작진은 아무나 데려온 것도 아니었다. 권 PD는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생각에 맥락과 매력이 있는 사람을 찾았다고 했다. 작가들에게는 “저 사람이랑 맥주 한잔하고 싶은가”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출연자 대부분도 온라인에서 마주치는 극단적인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대화가 됐다. 화가 나도 다시 앉았고, 생각이 달라도 상대가 사라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백곰 박성민도 방송이 끝난 뒤 자신의 코드대로였다면 하마를 살리고 마이클을 탈락시키는 선택을 해야 했겠지만 실제 관계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사람의 다면성과 관계의 입체성을 봤다고 했다.

 

바로 그것이 좋았고 동시에 아쉬웠다.

 

사람이 서로를 알아갈수록 사상보다 관계가 복잡해지는 과정은 좋았다. 반면 아무도 끝까지 미움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있는 마음이다.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은 이 공동체를 지켜내는 힘이었고, 동시에 이해관계가 끝까지 충돌하는 자리로 가는 것을 막는 힘이기도 했다.

 

화면 안에는 오랜만에 내 옆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특별히 훌륭하지도, 특별히 형편없지도 않은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도 있고, 눈치 빠른 사람도 있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만날 법한 군상이었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이들을 조금 더 어려운 현실 속에 세워봤으면 어땠을까.

 

집값을 이야기하되 한 사람은 집을 가진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전세 사는 청년이라면 어떨까. 사회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찬성한 뒤 그 시설이 자기 집 바로 옆에 들어온다면 그래도 같은 말을 할까.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실제 자기 몫에서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면 어떨까.

 

찬반을 묻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실제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면 더 궁금했을 것이다. 오늘의 선택 때문에 내일 손해가 돌아오고, 어제 손을 잡았던 사람이 모레는 반대편에 서고, 그 사이 누군가는 자신이 지켜온 말을 스스로 뒤집는 것.

 

정책을 묻는 게 아니라 사건 속에 세우는 것,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를 갖게 하는 것.

 

그렇게 며칠을 버틴 뒤에도 처음 받은 네 개의 숫자는 그대로였을까.

 

프로그램은 그 근처까지 갔다. 리더를 뽑고 돈을 분배했고, 익명으로 토론했으며 누군가를 탈락시킬 수도 있었다. 테드는 가능한 한 아무도 탈락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했고, 벤자민은 자신에게 부여된 불순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게임으로서는 충분히 재미있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이들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보다 《더 커뮤니티》라는 규칙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플레이어에 가까워졌다. 사회문제 자체보다 게임 안의 생존과 관계가 행동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 차이가 내게는 컸다.

 

물론 제작진에게는 다른 계산이 있었다. 권 PD는 일부러 지나치게 전문적인 토론 주제를 피했다고 했다. 어려운 주제를 던지면 시청자가 구경꾼이 되지만, 누구나 한마디 하고 싶은 문제를 던져야 화면 밖의 사람도 들어온다는 판단이었다. 이해한다. 예능은 논문도 아니고 공론조사도 아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사람을 ‘사상’으로 분류한 이상, 이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서바이벌보다 조금 더 큰 질문을 만들었다.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과 우리는 실제로 함께 살 수 있는가.

 

《더 커뮤니티》는 그 질문의 문을 꽤 멋지게 열었다. 나는 그 안쪽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지금은 시즌2 《더 커뮤니티2: 보이지 않는 손》이 공개되고 있다. 이번에는 한 공동체가 아니라 여러 집단에 서로 다른 자원과 생존 조건을 주고 거래와 외교, 경제와 국제정치 쪽으로 판을 넓혔다고 한다. 아직 보지 않았으니 그 이야기는 나중의 몫이다.

 

그런데 시즌1을 다 보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내 쪽도 조금 이상했다.

 

처음에 나는 제작진이 사람에게 붙인 네 개의 숫자를 의심했다. 사람이 그렇게 간단하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참가자들에게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침착한 사람, 영리한 사람, 정치하는 사람, 아는 것보다 확신이 센 사람. 제작진은 숫자로 나눴고, 나는 말로 나누고 있었다.

 

이들을 더 어려운 문제 앞에 세워보고 싶었던 이유도 프로그램의 완성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좌파라고 말한 사람이 자기 재산이 걸렸을 때도 같은 입장을 지키는지, 개방적이라고 말한 사람이 자기 생활권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도 같은 얼굴을 하는지.

 

‘역시 저럴 줄 알았어.’

 

그 말을 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프로그램은 그런 기대를 자꾸 비껴갔다. 신념이 있어도 관계 때문에 흔들렸고, 계산하다가도 뜻밖의 순간에 누군가를 지켰다. 정치적으로 다른 사람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졌고, 자신이 말했던 것과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사람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사람이 어디까지 처음의 자신으로 남고 어디에서 달라지는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애초에 PD의 의도는 아니었을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다음이 궁금했다. 이미 말과 행동 사이에 벌어지는 틈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완벽한 사람들의 토론이 아니라 적당히 현명하고 적당히 어리석으며, 명분도 있고 욕심도 있고, 때로는 비겁하고 때로는 뜻밖에 의리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실제로 피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쩌면 내가 원했던 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 열세 명을 통해 잠시, 조금 작은 대한민국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세대와 계급으로 사람을 나누고 그 칸 안에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막상 한 사람 가까이 가보면 늘 한 칸씩 어긋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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