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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가장 완벽한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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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표지에서 손이 멈췄다. 한 노인이 액자 속 아기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는데,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능처럼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의 앞과 뒤를 한 화면에 담아놓은 것 같았다. 건널 수 없는 경계가 분명히 있는데도 사람은 자꾸 그 거리를 잊는다. 어쩌면 환영이란 눈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닿지 않는 것을 향해 손을 내밀게 만드는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가까이 다가가면 얼굴은 사라지고 점만 남는데, 몇 걸음 물러서는 순간 흩어졌던 것들이 다시 하나의 얼굴이 되고 눈빛이 된다. 작품은 가만히 있는데 움직이는 것은 늘 관람객이었다. 그림을 감상했다기보다, 그림과 거리를 협상하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주름 하나에 쉽게 놀라지 않는다.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익숙해진 탓일까, 피부의 결이나 빛의 방향만으로는 감탄이 오래가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붓질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감탄보다 의심이 먼저 온다.

 

그런데 몇 걸음 물러서는 순간은 달랐다.

 

전시를 다 보고 출구 앞에 섰을 때, 출구를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안내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추다 발걸음이 돌아섰고, 처음 만났던 작품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입구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스페인 작가 파블로 후라도 루이즈(Pablo Jurado Ruiz)의 작품이었다. 수많은 점을 쌓아 인물을 완성하는 점묘 기법을 쓰는 그의 그림은, 가까이서는 점이 보이고 적당한 거리에서는 사람이 보이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나온 무게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달라질수록 그림보다 내가 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The Awakening도 그랬다. 전시장에는 더 사실적인 작품도 더 화려한 작품도 있었지만, 내 발걸음을 다시 돌린 것은 이 그림이었다.

 

살아가는 일도 비슷할지 모른다. 너무 가까이 있을 때는 점밖에 보이지 않다가, 조금 떨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얼굴이 되고 한 사람의 시간이 된다. 더 가까이 가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지만, 어떤 것은 한 걸음 물러설 때에야 선명해진다.

 

좋은 전시는 오래 보게 만드는 전시가 아니다. 다 보고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전시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지나쳤던 작품을 향해 다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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