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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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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 내 옆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는 공허함.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막막함 속에서 베케트의 몰로이를 펼쳤다. 나와 같은 길 잃음 속에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몰로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사랑 때문인지, 의무감인지, 그도 자신이 모른다고 한다. 자전거를 잃고 다리마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계속 나아간다. 기어서라도. 2부의 모랑은 더욱 기이하다. 몰로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몰로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찾아 헤매면서도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한다. 마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찾고 있으면서도..
삼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은 단순한 정치 운동을 넘어 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든 대참사였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이 혁명은 '구습타파'라는 명목 하에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수많은 서적과 문화재를 불태웠으며, 전통 문화의 맥을 끊어놓았다. 홍위병이라 불린 젊은이들은 스승을 고발하고, 이웃을 밀고했으며, 가족마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무수한 지식인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농촌으로 추방당했다. 이 10년은 중국이 근대화의 길에서 크게 뒤처지게 만든 암흑기였고,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중국 사회 깊숙이 남아있다. 넷플릭스 삼체는 바로 이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물리학자 예원의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장..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170분의 여정이 끝나고도, 커튼콜의 환호성보다 더 오래 내 가슴을 두드린 건 무대 위 한 사람의 두 얼굴이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지킬 박사와 폭력과 쾌락에 탐닉하는 하이드.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뮤지컬이 다루는 선과 악의 이중성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나쁘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안의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며, 한쪽을 없애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다. 악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속 깊이 뿌리내린 일부임을 보여준다. 하이드는 사회가 억압해 온 욕망, 분노, 이기심의 화신이다. 그렇다면 나의 하이드는 무엇일까? 무대를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이 영화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가 아니라, 확실히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이다.내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소탈하고 모범적인 앤에게 그 이데아가 있다면, 지금 2-30대는 해리포터, 찰리의 초콜릿 공장, 포켓몬이 근원이지 않을까? 소설 마틸다에서는..부모에게 무관심을 넘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마틸다는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억압을 하는 교장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지적호기심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 몸으로 실천하는 정의감으로 대응한다.그러나 그러한 용기는 초능력과 천재성이라는 특이성에 가려져 기존의 틀을 깨려면 마치 특별하고 영웅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물론 이건 지금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는 마틸다이다.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의 환경을 깬다는 것은 초능력이..
침팬지의 제국 인간과 유전자 차이가 단 2%라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 침팬지.영역 동물이자 사회적 무리를 만드는 정말 인간 같은 친척.“침팬지”라는 말에 “인간”을 넣어도 그대로 느껴지고 관찰되어서 놀라운 다큐멘터리 침팬지 왕국을 꼭 소개해서, 이 다큐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려 공감받고 싶은 나는 침팬지 같은 사회적 동물.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Kibale National Park)의 응고고(Ngogo) 지역 숲 속에서 집단을 형성하며 가족, 종족 간의 정치, 영역 다툼의 모습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침팬지의 제국’은 25년 동안 과학자들과 현장 조사 인력이 침팬지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 침팬지 집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실화 기반 다큐멘터리이다. 다큐의..
배운다는 건 뭘까? 니체의 ‘우상의 황혼’에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남의 가치에 수동적 따름이 아닌 자기 삶의 주체적 주인이 되어야 하며, 기존의 틀과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는 태도의 중요성과,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과정으로 배움을 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저마다 다른 사람이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낯설어하기도 한다. 각자에 맞는 방법과 속도를 찾아 배워 나간다. 계속 하다보면 점차 나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성장해 나간다.채인선 동화작가의 글 ‘배운다는 건 뭘까?’ 필사의 마음으로 적어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채인선 글. 윤봉선 그림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뭘..
빨간머리 앤 온 세상 아줌마, 아저씨들 카톡 프로필이 지브리풍으로 바뀐다 싶더니.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개봉을 했다. ‘어? 본 것 같은데?’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 당연히 본 것 같은데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아 넷플릭스를 찾아보았다.‘아, 역시 지브리.. 지브리 감성 그대로.’그리고 알고리즘의 힘... 한동안 지브리가 떠서 지브리를 보았다. 나우시카, 라퓨타, 그리고 빨간머리 앤.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친절하지 못한 번역. 거기에 흑백 삽화조차 몇 장 없었던 두꺼운 세계명작은 지금은 애써 후려치지만 사실 나의 가장 내밀한 친구였다. 그 명작을 읽고 잠이 든 밤에는 ‘그녀가 말했다.’ 따위의 번역은 끼어들 틈 없이, 나는 앤이었고, 걸리버였고 달타냥이었다. 꿈 속에서 삽화 없이도 능히 그릴..
분홍신 1948년 발매된 영화 분홍신은 아카데미 미술상, 음악상을 받은 작품으로 반쯤 미친 고흐나 괴팍한 머리 모양의 아인슈타인의 인기를 마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규정짓듯 인간의 예술에 대한 집착을 당시의 편견으로 그린 영화다.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동화 모티브 그대로 일차적인 대신 영화는 주무대인 안데르센의 ‘분홍신(빨간구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엄청난 실험이었을 영화 속 15분이 넘는 순수 발레 공연 장면은 당시에 쓸 수 있는 모든 기술과 화려함. 부릴 수 있는 모든 사치를 부린 무대는 색채, 미장센, 음악, 동작이 놀라울 정도로 환상적이어서 스토리 개연성과 관계의 불편함은 잠시 접어두어도 될 정도이다. 15분의 공연으로 영화 전체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는데, 스포도 아닌 스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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