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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플랜 75

75세 이상의 노인은 어떠한 조건... 그러니까 건강이라던가 재정상태, 일의 유무, 가족의 동의 같은 게 없어도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정책.

 

이미 일본 이상으로 고령사회라는 우리의 속도, 그리고 매일 나오는 국가소멸을 걱정케 하는 출생률과 공적연금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영화 플랜 75’에 절로 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소개를 받은 사람이라면 품을 당연한 생각들.

그러니까 ‘75세라고? 요즘 70대가 얼마가 생생한데...’라던가, ‘생산성이 없는 노인이라고 죽어야 한다면 장애인들은?’, 그리고 아니, 지들은 안 늙을 줄 아나.. 노인들이 여태 기여했기에 우리나라가 있는 것을..’ 이란 생각이라던가, 그렇다면 노령사회를 해결할 어떠한 방법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탐구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산 방식의 로봇화 등 패러다임의 변화나 생산성이 인간의 가치인가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도 영화 속 죽음에 대한 사회적 처우와 개인의 부딪힘 보다는 정책 자체에 대한 찬반을 생각하며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결국 안락사를 선택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를 상담했던 공무원, 마지막 전화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담사, 딸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안락사한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안락사를 선택한 담당 공무원의 삼촌 등이 나와 사회 시스템과 일관되게 움직이기 힘든 개인이 나온다.

즉 고령화라는 문제를 그대로 두고 개인의 개성을 부각시켜 개인의 죽음과 사회 문제를 대두시킨다.

나 역시도 영화 중간에 비용효과가 좋아사 플랜 75의 나이를 65로 내리는 정책 고민이 나오기 전까지는 개인의 존엄 문제로 영화 그대로의 시각대로 읽어 나갔다.

그러나 65세로 내리는 것을 고민한다. 라는 장면을 보자 고령화가 과연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이고,, 따라서 노인들은 문제의 원인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청년 문제에서 문제의 원인은 청년인가? 청년의 일자리나 주거,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 자체가 문제가 되는가?

노인은 문제라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시간에 따라 저절로 처해지는 약자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플랜 75의 세상을 사는 생각을 해 보았다.

75세가 아니더라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혹은 몸이라도 불편해지는 나이가 된다면 사회가 나를 짐스러워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사회.

영화에서는 한 번도 노인이나 약자에 대한 혐오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100만원쯤을 주고, 하루 15분의 전화상담으로 대화를 시도해 주고,, 언제든 마음을 돌려도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정한 경제적 여유, 대화상대와 네트워크.

죽음을 약속하면 주어지는 삶의 메시지라니.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주어지는 나긋나긋한 서비스가 섬찟하다..

 

남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데 그게 잘 안되면 외롭다 느껴진다.

삶이 근본적으로 외로운 것이 정상이라 생각하면 완전치는 않지만 위로가 된다.

더해 나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이 밝아 보인다.

완성된 무언가가 앞에 있을 것처럼 이번만’ ‘이번만하다가 완성 없이 나이가 든다.

이번만없이, 사회적 시스템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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