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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주연의 2016년 개봉작 죽여주는 여자.
OTT를 뒤지다 윤여정 이름을 보고, 클릭하게 된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종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 나중엔 실제 ‘죽여주는 여자’가 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진짜 ‘죽여주는’이 이 영화의 방점은 아니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제목을 짓고, 셋이나 죽여주게 되었는지는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다소 관계성이 떨어지지만, 아무튼 영화의 제목대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 소영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릴러, 액션, 범죄영화는 아니다.
‘죽여주는 여자’는 분명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존재하지만 ‘어? 내 주변에 있었어?’라고 생각되는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뉴스에서도 들어보기 힘든 박카스 할머니, 코피노 소년 민호, 한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이고 가난한 남자 성인인 피규어 작가 도훈, 트렌스젠더인 집주인 티나.
주류가 아닌 사람들은 삶의 이야기도 감정도 주류이기 힘들 것일까?
 
영화는 성병 치료차 간 병원의 의사가 필리핀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가위에 가슴을 찔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헙!’하고 놀랄 사이도 없이, 무작정 그 여자의 아들인 민호를 데려오고, 도훈과 티나에게 또는 일하는데 데리고 가면서 돌본다.
절로 ‘유괴인데...’란 소리가 나오게 무책임하게 살아지는 데로 살아가는 듯한 소영은 사실 삶에 깊은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때 자신의 단골 고객이자, 뇌졸중으로 쓰러진 송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죽여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받고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다 그를 진짜 '죽여주게' 된다. 그 일을 계기로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의 부탁이 이어지고, 소영은 자의적인 결단을 내리기 전에 ‘죽여주는’일에 휩쓸리게 된다.
 
입양 보낸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민호에게 투영되지만 책임감이 부족하듯 죽여주는 일에도 연민과 무서움, 죄책감이 뒤섞인 혼란으로 자의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경찰에 연행될 때도 그 속사정의 푸념 없이 내려놓아버린다.
 
”그사람도 어떤 사정이 있겠지. 것껍데기만 보고 얘기한다“한 주인공 소영의 말에서 자신의 형편에 따라 어떻게든 네트워크를 구축해 살아가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마저도 끊겨 고독사, 빈곤, 질병에 시달려 죽음을 생각하는 노인들이 소영이 겪을 죄책감에는 관심이 없는 모습에서 참 답답함이 느껴진다.
 
여러 이유로 사회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쓸데없이 자극적인 몇 장면들이 있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연기하기 참 힘들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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