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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이 세상의 한구석에

애니메이션 독립영화로 2016년 일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중 히로시마시 에바에서 자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스즈가 히로시마현 구레시로 시집을 가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19458월 히로시마 원폭을 목격하는 장면과 815일 패전선언까지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국인의 시선을 버릴 수 없는 천상 한국인인 나로서는 다소 꺼려지는 마음으로 보게 된 애니메이션이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일상을 빼앗긴 소시민 일본인의 이야기.

아니.. 그 전쟁.. 누가 일으켰냐구요...

당신들은 이유나 명분이라도 있지, 남의 전쟁에 끌려간 우리의 청년들, 학생들, 소녀들은

심지어 빼앗길 일상조차도 없는 식민지 청년들.

 

이런 생각을 배재하고 영화를 보려 했지만, 영화 초반 미술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첫사랑을 바다로 표현한 장면이라던가 세련된 백화점의 모습, 당시 일본 문화가 물씬 드러나는 결혼과정 등에서... 그러니까 당시 일본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로운 장면들에서 식민지 조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조선 수탈과 태평양, 동남아 공격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해군기지가 있는 스즈의 마을이 공습을 받는 장면, 그 공습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며 가족이 서로를 아끼고, 공동체를 위해 군수물품을 만든다. 함께 방공호를 파고 옷을 고친다.

 

이 영화는 2016년 개봉작이다.

그렇다는 것은 2016년이 될 때까지 가해자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마 확장의 시대에 혹은 진출이나 확장이라는 개념도 없이 시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전쟁에 일상이 사라진 피해자의 개념으로 영화를 만들었겠지.

공습 장면에서 철저하게 교육받은 대로 움직이는 스즈를 보며 일본인들이 그렇게 국가라는 조직의 부속물로써 철저히 교육받고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패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에 굴복한다 여기며 차라리 자신을 나도 모른 채 죽었으면 좋았을걸에서 보여지듯 자신을 무고한 피해자라 여기는 모습

 

어떠한 계층, 부류도 철저하게 교육 되어지고 긴박한 상황에도 저항 없이 따르는 일본의 국민성이 무섭기도 하지만 이 또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역사적 배경이 더욱 궁금해지기도 하다.

 

이렇게 한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않으면 영화는 아름답다.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나있는 듯한 붕 뜬 주인공도 사랑스럽고, 무엇보다 작화가 아름답다.

 

그리고 타인의 큰 아픔보다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그렇기에 해군지기 어딘가에 있을 조선인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림 그리는 오른손을 잃은 스즈는 일왕의 패전 선언과 함께 명분도 잃었다.

그렇게 비로소 현실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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