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녁 바람의 시원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그 계절이 왔다.
이 가을이 지나간 뒤 여밀 옷가지의 걱정과 텅 비어버린 나를 마주할까.
뭔가 수확해 채워야 하는 계절.
방치하다시피 한 여름이 지나갔다. 서점의 구간을 신대륙 탐험 하듯 지나다 눈이 간다.
“진실한 사랑은 변하는 게 아니다.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다면, 언젠가 꼭 만난다.”
“인연이 잠시 멀어져도 긴 시간 동안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이렇게 그 사람 앞에 서게 된다.”
’냉정과 열정 사이‘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봤다.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행복함에 있었다.
그 순간이 그리워 펼친 책에는 짧은 가을이 오고 긴 터널 같은 겨울,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이 보였다.
영화는 1999년에 출판된 쓰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어 2001년에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소설은 월간지에 한 회는 에쿠니 가오리가 이야기를 쓰고, 다음 간행 때는 쓰지 히토나리가 이어 쓰는, 교대 연재 방식으로 연재되었는데, 같은 사건을 에쿠니는 아오이의 시선으로, 쓰지는 아가타 준세이의 시선으로 그렸다.
소설 완결 후 에쿠니 파트는 빨간 표지의 Rosso(로쏘)로, 쓰지 파트는 파란 표지의 Blu(블루)로 묶어 단행본 세트로 발매되었다.
즉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가 각각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맡아, 한 회씩 번갈아 2년간 잡지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각각 따로 한 권씩만 읽어도 스토리 전개에 전혀 무리가 없는 책이다.
한 권만 읽어도 좋지만 두 권을 연달아 읽거나 연재된 순서대로 한 장(章)씩 번갈아 읽으면 더욱 좋다.
헤어진 연인을 가슴에 담아둔 채 각자의 삶을 사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두 작가는 실제로 연애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책에서 두 남녀의 감정은 끊임없이 냉정과 열정을 오간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독자로 하여금 잊고 있던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복원사라는 과거를 복구하는 직업을 가진 준세이는 그 직업처럼 어쩌면 자연스러운, 잊지 못하고 떠올리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첫사랑의 복원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때 그 재료와 기법으로 복원해야 하는 미술품처럼 복원이 쉽지 않은 것이 연애고 사랑인 모양이다.
연애는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다. 연애는 설렘과 회환과 애달픔과 우울과 절망과 고통을 준다. 그것은 과거의 나를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남녀의 사랑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원작 책이 있는 영화는 다소 독자의 상상과 표현이 달라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화 성공의 일등 공신은 OST이다.
섬세한 음악과 함께 피렌체 두우모의 낭만을 표현한 ‘요시마타 료’의 ‘The Whole Nine Yards’은 음을 들으면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알아듣는 노래가 되었다.
“과거 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맺은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간다.
클래식 같은 이 영화는 내가 맺었던 약속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가슴속 가득 찬 상대방에 대해 냉정과 열정의 중간은 스스로 조절하기 힘들다. 잊을 수 없는 것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믿기 힘든 벽에 부딪히게 되고 극복하지만 나도 상대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 있다.
나는 어떠한 준세이와 아오이로 살아가고 있고 지금 어디 즈음 있을까?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또한 평생을 바쳐 노력한다 해도 내겐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이해한다 해도.”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 된다 해도, 나로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사랑이 있는 거다.”
“언제나 아름다운 주인공을 꿈꾸는 우리.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서글픈 조연일 수 있음에.”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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