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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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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혼자 제주는 혼자 온 사람을 잘 숨겨준다.그렇다고 위로하지는 않는다. 도착해 처음 들어간 커피숍, 창가 자리였다. 햇빛이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커피 잔 옆에 그림자가 하나 생겼다. 충전기를 꽂아두고서야 자리에 제대로 앉았다. 왜 여기 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혼자 간다는 건 목적지보다 함께 가는 사람이 먼저 떠오르던 그 습관을 부수는 일이다. 어쩌면 장면의 소유권을 되찾는 일에 가까운.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를 만났다. 내게 탈출 같은 시간이 그에겐 그냥 사는 곳이라는 사실. 그 간격이 묘하게 편안했다. 친구가 하는 술집에 들어서자 레트로한 조명이 낮게 깔려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 어깨가 먼저 내려앉는 그런 공간이었다. 술이 한 잔씩 쌓이는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부끄럽지 ..
홋카이도에서 홋카이도에서 무릎까지 차오른 습기 없는 눈에 해가 비치면 세상이 애니메이션처럼 보인다. 한 뼘 간격으로 보석 같은 결정이 반짝거리고, 그 반짝임이 눈앞 공기에서도 느껴진다. 눈은 땅에만 쌓여 있는 게 아니라, 시선과 숨 사이에도 떠 있다. 시선을 조금 멀리 보내면 반사된 햇살에 새하얀 언덕이 드러나고, 어린 시절 TV 속에서만 보던 뽀로로 마을에 와 있음을 그제야 알게 된다. 현실인데, 기억처럼 보인다. 밟아본다. 교과서처럼 뽀드득 거린다. 발을 떼고 다시 내린다. 뽀드득. 같은 자리에 다시 발을 올려도 소리는 늘 조금씩 다르다. 눈이 계속 내리는 중인데도 발바닥 아래에서는 매번 새로운 저항이 느껴진다. 눌린 눈과 눌리지 않은 눈이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내가 한 장 더 얹힌다. 눈 벽에 파묻혀 넓었던 ..
오키나와 沖縄 뜨겁고 습한 우리의 여름과 날씨가 비슷한 일본은 여름 여행 장소로는 별로 추천을 받지 못한다. 볕 뜨거운 여름에도 잔소리가 있어야 겨우 바르는 썬블럭을 챙겨 들고, 늦은 봄 오키나와를 다녀왔다.오키나와는 일본안에서도 본토와는 다른 역사를 지닌 섬나라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여러번 단독으로 등장하는 곳이고, 일본에 정복당한 후 가장 치열한 태평양 전쟁의 장소가 된 곳이다.지리적으로 동중국해와 태평양 사이에 위치하며 특히 긴장감이 감도는 대만의 옆이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크기와, 인구, 인구밀도까지 울산과 비슷한 이 섬나라의 첫인상은 일본이되 무언가가 다른 일본이다. 야밤에 태국 공항에 도착해본 사람이라면 느꼈을 이질적인 공기처럼 마치 진이 빠져나갈 듯한 습함이 우리를 맞이한다.피부의 끈..
후쿠오카1 (2022. 12.)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후쿠오카를 처음 방문한 것은 작년 12말. 나는 한 해의 마무리를 후쿠오카에서 했다. 못키리 스타일을 경험하고픈 큰 뜻을 품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첫 끼니로 오코노미야끼를 시켜 두고 생맥주를 마셨다. 토리아에즈나마비루! (일단 생맥주!) 일본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단 생맥주! 흉내 내었는데, 살짝 땀을 흘린 상태에서 생맥주의 목 넘김이란...... 아직 후쿠오카를 둘러보지도 않았지만, 정말 ‘오길 잘했다’란 만족감이 들었다.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의 공기를 더 느껴보고 싶어 숙소 근처 골목들을 빠른 걸음으로 훑고 다녔다. 그러다 눈에 띈 오레노다이도코로(내부엌)라는 간판. 도무지 안을 알 수 없는 작은 이자카야 앞에서 두어 걸음을 앞뒤로 ..
가을 들녘이 아름다운 안동 물돌이 마을 유교의 본고장 안동에 갔다. 정확히는 안동 하회마을을 보러 갔다..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도산서원에 먼저 들렸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해 선조 7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는데, 1575년 선조로부터 우리가 아는 그 떡 써는 어머니 이야기의 한석봉이 쓴 ‘陶山(도산)’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면 강 건너 섬처럼 보이는 언덕 위에 시사단이 보인다. 정조가 이황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여기 근처에서 과거 시험을 치렀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비석단이다. 안동댐을 만들면서 단을 10m 높이로 쌓아서 건물과 비석을 옮겨 왔는데, 꼭 나 홀로 섬이 있는 것 같다. 서원에 도착하여 제자들..
땅과 사람의 이야기 토지, 하동 토지, 태백산맥, 화개장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지리산이 있을 것이다. 가보진 않았지만 왠지 민족정기가 흐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러니까 민중인 사람이 있는 그 곳. 고향도 아닌데 향수를 자극하는 곳, 지리산. 여름을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 하동 쌍계사 계곡에 발을 담그러 다녀왔다. 대학 때처럼 지리산을 오를 자신은 없고, 그저 쌍계사까지 슬슬 걷기와 쌍계사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 좋겠다 싶어 긴긴 시간 차를 몰았다. 쌍계사 계곡은 단연 내가 본 계곡 중 가장 큰 계곡이다. 근 바위와 돌들이 깊은 산 바로 밑 계곡임을 말해주지만 크기는 계곡이 아니라 강이다. 계곡에 들어가기는 벌써 추워서 물놀이를 하는 가족은 안 보이고, 발을 조금 담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경북은 강원도와 붙어 있어서 그런지 은근 깊은 산과 온천이 많다. 주말에 호랑이가 나올 것 같은 깊은 산속 산장에서 하루를 묶었다. 쭉 뻣은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금방 시골의 이면도로가 나오고, 곧 흙길이 나왔다. 차가 올라갈 수 있나 싶을 정도의 가파른 길을 계속 올랐다. 망망대해에 점 하나 찍어 놓은 듯한 위치. 네비게이션을 믿고 계속 달렸다. 앞 뒤 사방이 다 산이다. 깊이 들어온 모양이다. 산장 앞에 주차 공간이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간헐적으로 비가 날린다. 주차를 하고, 들어가니 찻집이 있다. 아무리 봐도 차를 팔고 돈을 받을 분위기는 아니다. 산 모양 그대로 산장을 지으셨는지 산장의 집들을 연결한 길들이 가파르다. 짐을 풀고 좁은 마당으로 향했다. 마당에는 돌을 깎아 만든 바둑판과 돌 의..
바다를 걷는다 삼척해상케이블카 강릉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삼척에 들렀다. 몇 년 전 바닷바람을 맞으며 레일바이크를 시원하게 탔던 기억으로 다시 들렀는데, 그 새 해상케이블카가 생겼다. 세상에! 시작부터 끝까지 쭉 바다 위를 달린다니 꼭 타봐야겠다. 케이블카 주차장에는 마을 어르신으로 보이는 노인 두 분이 주차 안내를 하고 계셨다. 이 폭염에 덥지도 않으신지 활짝 웃으며 맞아주신다.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니 색색으로 대기선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그 선을 따라 줄줄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다행히 대기 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대기하는 곳의 풍경도 좋다. 에어컨 바람 아래 20분 정도 기다려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사방이 심지어 바닥까지 유리로 되어 있는 케이블카가 탑승객을 기다린다. ‘와.... 바다...’ 어디로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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