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모든 것 모든 곳 한번에.
생각해보라. 한 번에 모든 것과 모든 곳이 함께 있다면.
와.. 혼란 대잔치.
마치 불교 탱화 같은 저 포스터처럼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대혼란 그 자체이다.
세탁소 주인이자 이민자이자 어머니, 아내, 딸인 에블린이 조부 투바키가 되어 버린 딸 조이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배우, 쿵푸고수 등 각종 다중 우주의 인생을 받아들인다.
사실 세탁소 주인 에블린은 순간순간의 선택에서 갈라진 수많은 세계, 다중 우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실패와 좌절로 만들어진 최악의 에블린이다.
뒤돌아보면 운명의 결정을 할 때가 있다. 그때 당신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에 오른쪽으로 갔더라면, 그걸 사지 않았어야 했는데... 등.
그 선택의 갈림길마다 다중우주가 생기는데 그중 최악의 선택만을 모았을 때 결과물이 세탁소 주인인 우주의 에블린인 것이다.
다중우주속의 삶들을 점프해 보았지만 역시나 세탁소 주인의 삶, 즉 조이의 엄마라는 삶을 버릴 수 없었는지 에블린은 조이와 조부 투바키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딸”인 조이와 딸인 “조이” 사이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즉 조이를 조이라는 사람 그대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딸”인 조이로 받아들이는 에블린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도 보인다.
결국 조이와 에블린은 여느 부모자식들처럼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경험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이상 할 것이 없어 터질 듯한 한계에 부딪친 조이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갈라진 수많은 세계 중 최악을 살고 있는, 그래서 아직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정 반대의 에블린
공허함과 허무함에 빠진 조이는 감정의 응집체 베이글로 빨려 들어가기를 선택하지만 에블린은 절대로 조이를 놓지 못한다. 심지어 그 뒤로 남편과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붙잡아 주고 있다.
가족 간의 사랑이라는 고리타분하면서도 마치 정답, 명제처럼 받아들여지는 이 장면과, 버스 점프를 위한 괴상한 즉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이 만나면서 이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이 짐작된다.
일상적이지 않은 혼란. 그러나 결론은 가족 간의 사랑. 즉 일상의 소중함.
즐겁게 여행 다녀와서, ‘역시 집이 최고지!’라고 말하게 되는 일상은 마지막 장면인 돌멩이 에블린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린(베이글에 빨려 들어가는 것보다 더 주체적인 선택인) 돌멩이 조이를 따라 몸을 던지는 장면이 그것이라 생각한다.
“규칙 같은 건 없어. 너에게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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