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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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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불안 아이에게 부모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너 이럴 거면 먼저 집에 가. 엄마 혼자...” 마트에서 본 장면은 아이를 내다 버리겠다는 말도 아니고,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말도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는 것도 아닌, 그저 집으로 가라는 다그침이었다. 해석하자면 “말을 안듣고 걸리적거리는 너는 먼저 둥지로 가 있어라. 내가 혼자 먹이활동을 해서 들고 가겠다.” 는 효율적인 방식. 하지만 아이는 눈동자가 흔들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제가 펼칠 수 있는 눈물과 신경질과 분노를 표출했다. 모든 아이들은 유기불안이 있다. 어릴 적 고모가 놀린다고 한 “너 아기때 저 다리 밑에서 주워왔잖아. 그때 고모가 씻기고 먹이고 힘들었다.” 말에 아니라고 믿으면서도 자기 전 이불 밑에서 눈물 1방울과 불..
어쩌다 어른 나는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왜 어쩌다가 어른이 되었냐면, 그 누구도 어른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어른자리에 있다. 지금도 그렇다. 아무도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는 세상이다. 옛날. 그러니까 조선시대쯤의 옛날. 어른의 모습과 답이 정해져 있던 시절에 좀 더 어른이 되는 게 수월했을 것 같다. (삶이 수월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태어나면 노인이나 손윗형제가 나를 돌보고, 걷기 시작하면 형제와 동네 아이들을 따라다닌다. 꼴도 메고, 잡초도 뽑고 새참도 나르다가 동생도 돌본다. 자연스럽게 내가 할 일을 배우고, 마을의 손위 사람들을 보고 어른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생로병사와 삶이 집과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지금은 조금 어렵다. 출생부터가 ..
부모신화 아이에게 부모란 신과 같은 존재이다. 나를 존재하게 해 주었고, 나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 일정 기간 돌봄이 필요한 어린 시절이 있는 동물은 동글동글 귀엽게 생기거나 애처로운 울음소리로 부모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했고, 어린 시절이 그 누구보다 긴 인간은 모성본능이니 가장의 책임감이니 하는 문화까지도 더해서 개체를 이어왔다. 어릴 때는 부모에 대해 한 치 의심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다소 엄격하시다라던가, 감정적이다라는 불만은 있었지만,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삶을 희생하고 있다는 명제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기함정에 빠져서 형제들과 관심을 경쟁하며 부모님께 인정을 받으려 하고, 사랑을 받으려고 했다. 학교에서도 책과 TV에서도 내가 아프면 밤새 간호를 하는 어머니의..
내담자로서의 나 몇 가지 약을 손에 들고 앉았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스쳐간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 두 달 전이다.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는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이에 따른 상실감이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적인 문제에다가 조금의 불안. 답을 알고 시작한 상담은 어쩌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로 바뀌었다. 내가 하는 말을 다시 되돌려 줄 뿐인데, 제삼자를 통해 객관화된 워딩을 듣게 되는 소름 끼치는 경험이란. 자격증의 권위와 함께 다가오는 무거운 말들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진행할수록 나의 편협한 생각이 드러났다. 부끄러웠다. 발설하지 않을 전문가임을 알면서도 숨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무서워졌다. 나는 전문가와의 상담 태도에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태도로 ..
변했다. 사람에게 실망할 때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래, 뭐... 사람이 기곈가? 인간 고쳐 쓰는 거 아니지...’라고 자조했다. 특히 오래된 관계에서 매번 같은 부분에 화가 나면 상대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둘의 케미가 문제인지 고심했다. 나만 인간관계가 어렵나? 내가 너무 기대했나? 이제 그만 손을 놓아버릴까? 그래, 인간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그랬다. 타고난 성격유형이 있다며 MBTI 검사도 한다. 심지어 나도 MBTI 성격유형의 설명이 나에게 꽤 잘 들어맞는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가끔 저 인간은 저런 유형이라서 저러니... 이제 손절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런데..... 변했다. 내가 변했다. 국수를 좋아했다. 20년 넘게 너무 좋아해서 꼭 곱빼기로 먹고도 더 먹을 수 있었다. 커..
졸업, 모서리를 돌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책과 논문을 읽고 읽어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과제, 프로젝트, 시험 사실 휴학을 전제로 한 입학이었다. 스스로 능력에의 의심. 이 학문적 추구가 현실적으로 적합한지 의심스러웠던 매 순간을 지나 쉬지 않고 3년을 다녀 드디어 졸업한다. 스스로 정해놓은 상위 퍼센트의 압박감이 힘들었고 교수님들의 학문적 요구는 내가 이전에 경험하고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았으며 매 수업 과제 제출의 부담감과 교수님의 피드백을 바라보며 드는 스스로의 패배감도 있었다. ‘학교 가기 싫다...’ 대학원을 다니며 가장 많이 한 말은 ‘학교 가기 싫다’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학생은 학생인지라 공부가 하기 싫어 어찌나 학교가 가기 싫던지... 퇴근 후 늦은 시간 다시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하루의 피로를 함께 매달아..
바란다 기대는 믿음에서 나온다. 그가 약속 시간에 맞춰 나올 거라는 기대. 의사가 내 병을 파악하고 적절한 진료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 4000원을 내면 향긋한 아메리카노를 1잔 받을 거라는 기대. 그리고, 내가 말을 하면 내 뜻을 알아들을 거라는, 나에게 공감해주고 나를 지지해 줄 것이라는 기대. 소통과 변화는 믿음 중 가장 어려운 믿음이다. 그래서 소통하기 전에 한 걸음 물러날 때도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상대가 내 생각과 달라서 실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그를 믿었구나 자각된다. 그리고 또 한 걸음 물러난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보살핌을 갈구한다. 나도 그렇다. 공감과 소통을 바란다. 믿음도 파악하는 능력이다. 전투력처럼 보이진 않지만 상대에 따라 자기만의 믿음 수치가 있다. 가끔 정답이 있는 ..
나의 동굴 ‘오늘의 커피’가 하루의 중요 이벤트인 나는 혼자 갈 때와 둘 이상이 함께일 때의 카페를 구분하는 나는 자주 가는 카페가 생겼다. 번화가에 있어 어디로든 이동하기 좋고, 번화가에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 북적이지 않는다. 프랜차이즈라 커피 맛이 일정하고, 프리 쿠폰까지 남은 개수를 위해 적립하고, 등급 올리는 재미도 있다. 번듯한 주차장이 있고,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 스크린 속에 스크린이 있는 듯한 창 밖을 바라보며 목격자의 독특한 특권을 누리기도 하고, 종종 벅차게 느껴지는 연결감을 느끼다 뜻밖에 만남에 몰입하기도 한다. 빗속에 나름의 박자, 와이퍼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차들도 다 목적이 있진 않을 거라고 위로를 해보고 꽁양꽁양 사랑 찾아가는 차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