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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졸업, 모서리를 돌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책과 논문을 읽고 읽어도 끝이 없어 보이는 과제, 프로젝트, 시험

 

사실 휴학을 전제로 한 입학이었다.

스스로 능력에의 의심.

이 학문적 추구가 현실적으로 적합한지 의심스러웠던 매 순간을 지나 쉬지 않고 3년을 다녀 드디어 졸업한다.

 

스스로 정해놓은 상위 퍼센트의 압박감이 힘들었고

교수님들의 학문적 요구는 내가 이전에 경험하고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았으며

매 수업 과제 제출의 부담감과 교수님의 피드백을 바라보며 드는 스스로의 패배감도 있었다.

 

학교 가기 싫다...’

대학원을 다니며 가장 많이 한 말은 학교 가기 싫다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학생은 학생인지라 공부가 하기 싫어 어찌나 학교가 가기 싫던지...

퇴근 후 늦은 시간 다시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하루의 피로를 함께 매달아 두 배로 무거웠다.

 

3년을 휴학 없이 버티어낸 가장 큰 힘은 동기들의 동지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는, 다양한 나이와 캐릭터를 가진 나의 동기들.

공동의 레이스에 대한 유대감은 석사 과정 도전을 이해하는 학문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만들어 버티게 해 준 고마운 나의 동기들.

 

그리고 학문하는 즐거움

내 속에 숨어 있던 읽기와 쓰기의 즐거움

공부하기 싫어.. 라고 하지만 사실 새로운 앎과 내 생각을 펼치는 즐거움이 숨어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읽히지 않는 책을 붙들고 요약하며 결국 읽고야 말았다는 성취감

국회도서관을 우리 집 냉장고처럼 자주 열고 검색하며 논문을 살펴보던 노고

쌓은 시간 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

 

3년간 100% 출석을 어찌 할 수 있었겠나. 마음속 계절의 바뀜이 있고, 아른거려 보고 싶은 이가 있고, 공부가 하기 싫고... 10가지가 넘는 이유로.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이 하기 싫어 조퇴권에 온 하루를 집중했었던 것처럼 어렵지도 않아서 품위가 유지되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땡땡이도 쳤었다. 이럴 때 마시는 소주는 유난히 맛나다.

 

오랜만에 학부생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여러 가지다. 성인일 텐데 나에게는 아직 애기들로 보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인이 된 듯한 꾸밈이 귀여워도 보이고, 중간·기말고사 때는 모자를 눌러쓰고 도서관에 앉아 열중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바라본 이들은 앞으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어른으로 성장하겠지. 응원한다.

 

우리 동기들은 카톡 방을 없애지 않고 모임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과대가 아닌 새로운 회장도 뽑았다. 리더십 있는 큰형님이 회장이 되어 어르고 달래고, 때론 강압적으로 잘 이끌어 나가시리라. 그리고 모임 이름을 정했다. ‘고학력자 모임’. 자조적 성격도 있으니 웃고 그냥 넘어가주시라^^.

 

그리고 이제 드디어 졸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