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거기 어디야?”
“아, 나는 망원시장이야.”
한 번씩 예능프로를 보면 서울의 특정 지명을 마치 우리 동네 말하듯, 전 국민이 당연히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사용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지방러인 나는 불편해진다.
‘아니... 내가 사는 도시의 모든 동네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서울까지..’
예능뿐만 아니다. 시민 인터뷰에서도 서울 사람들은 “천호동에서 온 000입니다.”라고 동 이름을 말한다. 동을 말하면 서울 사람이다.
아.. 이 서울공화국. 문화와 의식까지 다 빨아먹는 서울공화국.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서울 100리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영향인지 지금도 우리가 알고 있는 10대 대학은 죄다 서울에 있다. 의료도 마찬가지고 문화도 마찬가지다. 서울 부동산 가격에는 정약용선생의 값도 있다.
조금 아프면 우리 동네 병원을 가지만, 암 정도 되면 다들 서울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사업을 시작해도 일단 서울을 한번 둘러보며 유행을 살펴야 될 거 같고, 서울 대치동에는 무언가 우리는 알 수 없는 특급 비법이 있을 것 같다. 여기 지방에 계속 있으면 점점 뒤처지고 언젠가는 논두렁 사이에 외롭게 서 있는 집 한 채가 될 것 같다.
학교도 일자리도 의료도 교통도 몰려있으니 인프라가 좋은 것이 당연하다. 국민의 50%가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니... 빈익빈 부익부. 인프라가 집중되고 지방소멸을 앞당긴다.
날씨예보조차도 마찬가지다.
태풍이 불어와도 그 태풍이 수도권을 스치냐 아니냐에 따라 예보를 시작하는 시기와 횟수가 달라진다. 동해안만 스쳐 지나갈 때와 수도권에 영향을 줄 때의 뉴스 시간이 다르다.
강원도에 물난리가 나서 몇백 명 수재민이 발생하고, 작년에 피해 입었던 지역이 여전히 피해를 입어도, 뉴스 비중은 강남 물난리 한 번만 못하다.
이러니 서울로 서울로 서울로..
역대 정부마다 위성도시도 만들고, 도로와 철도망도 촘촘하게 만들고, 공기업을 이전하는 혁신도시도 건설하고 심지어 행정수도도 옮기는 시도를 한 것을 보면 분명 노력을 한 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만 해도 서울 사립대보다는 높게 쳐줬던 지방국립대가 지금은 거점으로 키우려고 해도 거주비와 생활비 그리고 높은 등록금을 내야 하는 서울 사립대만 못하게 되었으니, 분명 우리 인식 속의 서울공화국은 실제 효용보다 더 가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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