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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문턱에 선 듯 불안감을 주는 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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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가 서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천천히 보이지만 실은 맹렬하게. AGI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변화 앞에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두려움을 느낀다.

 

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한 도구쯤으로 여겼다. 뉴스에서 AI가 언급될 때마다 '그런가 보다' 했고, 자율주행차나 주식 시장의 변동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전문가의 영역에서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어온 이 힘은 지금까지의 모든 틀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AGI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것도 곧.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말한다. 노동 없는 풍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수명은 획기적으로 연장되고, 불치병은 사라지며, 인류가 상상하지 못한 과학적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묘한 공허함을 느낀다.

 

우리는 '필요받는 경험'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삶에 의미가 된다는 감각.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였던 시대에, 노동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할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나는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더 무서운 것은 의미의 상실이다. 인간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다. 실수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삶의 서사를 만든다. 그런데 완벽한 존재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서툰 노력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통계들이 쏟아진다. 사라지는 직업, 살아남는 직업. 세대별 채용 변화. 매일 누군가 미래를 예측하고 경고한다. 그러나 숫자와 그래프 너머에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이 있다.

 

20대 취업준비생은 어떤 직업을 준비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부모 세대가 걸었던 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30대는 이제 막 자리를 잡은 자신의 경력이 10년 후에도 의미가 있을지 불안해한다. 40대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버겁다. 50대는 은퇴 후 3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의 독점이다. AGI 기술을 가진 소수의 기업과 국가가 전 세계의 부와 권력을 재편한다. 기술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격차는 과거 산업혁명 시대의 격차보다 훨씬 더 극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다. 결국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문제는 그 선택권이 지금 극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몇몇 기업, 강대국 정부, 거대 자본. 그들이 설계하는 미래에 우리는 그저 적응해야 하는 존재일 뿐일까.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AI 분야 독자적 투자를 지켜본다. 잘 알지 못하지만, 이것이 앞으로의 먹거리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건 안다. 우리의 기술력을 키워 재편되고 있는 설계 속에 우리도 참여하기를, 아니 그 무리 속에서 함께 리드해 나가기를 바란다. 적어도 선도하는 그룹에 속해야 우리 후세대가 안전하게 인간의 가치를 가지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까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건너가고 누군가는 낡은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바란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무섭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소수가 인간의 가치를 살려 잘 선택하기를. 우리가 필요받는 존재로 남을 수 있기를. 서툴고 불완전하지만 의미 있는 우리의 노력이 여전히 가치를 가질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선택하는 무리 속에 우리나라도 함께 있기를.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산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현재를 사는 것조차 벅차다. 과거의 경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재, 그리고 상상조차 어려운 미래.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서 있다. 움직이는 땅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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