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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무지갯빛이었다.
햇살이 바뀌자, 관람차 오르골은 벽 위에 다른 얼굴을 남겼다.
한때는 음악이 돌고, 빛이 흩어졌다.
지금은 멈췄다.
소리도, 회전도 없다.
남은 건 오직 그림자 하나.
나는 그 그림자를 오래 바라본다.
빛은 빠르고 변덕스럽다.
아침이면 길게 늘어지고, 한낮엔 쪼그라들고, 저녁엔 사라진다.
그림자는 그런 변화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빛이 가는 대로 모양을 바꾸되,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킨다.
말도 없고 얼굴도 없지만, 모든 것을 그대로 베껴 산다.
묘하게 충성스럽다.
감정이 흐려질 땐 관찰이 유일한 구명줄이다.
뭔가를 자세히 본다는 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다.
색이 사라지니 형태가 드러난다.
그림자는 빛보다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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