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어느 사찰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났던 금목서. 은목서도 함께 피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지나쳤다. 내 코끝을 스친 것이 기억의 뿌리를 내릴 줄은 몰랐다.
이제 금목서는 숨은 무언가를 찾는 놀이처럼 나에게 온다. 낙엽이 떨어진 공원길, 어디쯤에선가 향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멈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린아이처럼, 보물찾기하듯. 보이지 않는 한 그루가 이토록 넓게 제 몸을 푼다는 게 신기하다.
향기는 방향을 갖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데 어디에나 있다. 머릿속 구겨진 생각들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어 주름을 편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들이 멀어진다.
가을임에도 노랗지도 빨갛지도 못한 단풍이 그냥 누런빛으로 떨어진다. 흐리고 비 오는 날들이 물들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강변도 공원도 아름다운 가을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시원함보다 조금 더 한 바람만이 계절을 알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이지 않는 금목서 한 그루가 흐린 가을 전체보다 더 또렷하게 남는다는 것이. 제대로 물들지 못한 나뭇잎들보다 한 줄기 향기가 더 깊숙이 들어온다는 것이.
사찰 가는 길에서 시작된 작은 놀이 하나. 그것이 이제는 내가 세상을 거니는 방식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따라 걷고, 완성되지 않은 것에 더 오래 머문다.
향기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한다. 덜 물든 계절 속에서 더 깊이 물들게 한다.
여기 이 향기를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글자 사이로 금목서 향이 새어 나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