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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부조리, 세상의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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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들의 태도, 공무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비단 사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의 근저에 깔린 부조리라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이치나 도리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기대에 등을 돌린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이가 좌절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뻔뻔하게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이 세상의 기본 원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부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치에 맞게 살려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그 기대를 무너뜨리는 세상이 이상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부조리를 논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알베르 카뮈의 그림자 아래 서게 된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를 '인간의 이성적 요구와 세상의 비이성적 침묵 사이의 단절'로 정의했다. 인간은 의미와 질서를 갈망하지만, 우주는 그 질문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일부 검사들의 행태에서도 단절을 목격한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법 앞의 평등''도덕적 책임'이라는 이성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조직 이익과 권력 유지라는 비이성적, 혹은 적어도 비도덕적인 논리이다. 그들의 방패는 언제나 법의 핑계,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이성적인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조직은 다르다', '우리는 법 위에 있다'는 비도덕적인 태도가 숨어있다. 이것이야말로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전형적인 발현이다.

 

내가 분노하는 지점은 바로 '도리'를 관습이나 감정으로 치부하는 태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법 조항을 들이밀고, 그것이 곧 '이성적 핑계'가 된다. 법은 글로 적혀 있기에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법의 집행과 그 뒤에 숨겨진 '도리'의 해석은 극도로 주관적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법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들이 모여 다수의 행복과 질서를 위해 만든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욕망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절제한다는 뜻이다. 규칙을 지키고, 세금을 제때 내고, 남을 속이지 않는 평범한 시민들의 선택이야말로 문명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하지만 그 기둥들이 흔들릴 때, 특히 법을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먼저 그 기둥을 흔들 때, 우리는 부조리의 깊은 늪에 빠진다.

 

어떤 조직이든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나약하고 돈의 생리 앞에 약해지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승진을 위해 상사의 눈치를 보고, 조직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한 번쯤 접어두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핑계로 옳지 않은 일에 눈을 감는다. 이런 인간적 약함이 모여서 거대한 조직의 부조리를 만들어낸다.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일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 나약한 존재이지만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혼자서는 부족하니 서로 견제하고, 서로 격려하며, 때로는 서로를 질책하면서라도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선을 지켜나가야 한다. 그것이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언론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이며, 우리가 여전히 분노할 줄 아는 시민으로 남아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부조리 앞에서 우리의 분노는 단순히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인 도리가 무시당할 때 터져 나오는 정당한 저항이다. 법이 도리의 최소한의 선을 지켜주지 못할 때, 우리의 분노는 법의 부조리성을 고발하는 외침이 된다.

 

부조리는 비단 거대한 권력 조직에만 남아있는 잔재가 아니다. 모든 조직, 가정, 심지어 개인의 내면에도 부조리한 면모는 남아있다. 권력과 정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부조리는 언제나 싹을 틔운다.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불합리한 사건들 역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세상의 무심함이 빚어낸 부조리의 산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부조리를 근본 원리로 안고 있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카뮈는 자살, 종교적 희망, 혹은 철학적 도피 대신 '반항(Revolt)'을 제시했다. 부조리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 세상이 이치대로 굴러가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반항은 시작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항하는 것, 검사들의 행태처럼 법과 도리를 위반하는 모든 부조리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그들의 오만에 맡기지 않겠다는 강한 확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 부조리의 외로움에 맞서, 서로의 도리를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이치에 맞게' 살아가려는 이들의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들은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비이성적 침묵에 맞서는 가장 고결하고 이성적인 반항이라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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