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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 영화 ‘로마’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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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은 바닥이다. 누군가 타일을 닦고 있고, 물이 고이고, 그 위로 하늘이 비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알폰소 쿠아론의 2018년 작 로마.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멕시코시티 콜로니아 로마를 배경으로, 가정부 클레오가 살아낸 일 년의 시간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 이야기는 멀리서 꾸민 서사가 아니라, 감독의 실제 가정부였던 리보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한 기억의 기록이다.

 

흑백이라는 게 이상하다. 색이 없는데 색감이 다채롭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선명하다. 상류와 하층이 한 화면 안에서 숨 쉰다. 색채가 사라지자 장면들은 더 투명해지고, 감정은 덜 흔들리고, 관계의 결은 더 또렷해진다. 흑백은 색을 빼는 방식이 아니라 관계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클레오는 조용하다. 아이들을 돌보고, 빨래를 하고, 식탁을 닦는다. 그녀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기 어렵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감정을 내려놓는 것이 이미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세계를 떠받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자기 감정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그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카메라를 고정한 채 그녀가 버티는 시간을 함께 견디게 한다.

 

롱테이크가 계속된다. 컷이 없으니 도망칠 틈도 없다. 관객은 클레오의 리듬을 따라가야 한다. 그녀가 걸으면 함께 걷고, 그녀가 멈추면 함께 멈춘다. 쿠아론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그녀의 하루 속에 들인다. 말보다 시간이 많은 영화.

 

집 밖에서는 학생 시위가 일어난다. 80년대 한국의 풍경과 기묘하게 닮았다. 빠른 산업화의 틈새에서 쏟아지는 통제와 혼란. 그 소음 속에서도 클레오는 묵묵히 일한다. 상류층 집안의 평온함과 거리의 혼란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한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지른다. 고정된 프레임 위를 스치는 그 움직임은 묘하게 이질적이다. 삶은 멈춰 있는데, 세계는 흘러간다. 그 대비가 이 영화의 리듬을 만든다.

 

남자들은 모두 떠난다.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사라진 남자, 출장이라는 이름으로 짐을 싸는 아버지. 그들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저 자리를 비운다. 책임을 두고 간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개인의 악함이 아니라, 책임을 방기하는 시대의 구조 그 자체를 상징한다. 빈자리는 여성들이 메운다. 조용히, 말없이.

 

병원 장면이 온다. 아이의 심폐소생술. 카메라는 여전히 고정되어 있고, 음악도 없다. 클레오의 시선만 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다. 감독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잔인하다. 클레오는 자기 아이를 잃는다. 느낄 틈도 없이 삶은 계속 이어지고, 옆집에서는 결혼식이 열리며, 아이들은 뛰어논다.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시작하는 시간. 서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동시에.

 

바닷가 장면이 온다. 아이들이 물에 휩쓸린다. 수영도 못 하는 클레오가 뛰어든다. 그녀는 아이들을 구한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다.

나는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요.”

이 말은 고백이 아니라, 평생 삼켜온 것이 터진 소리다. 자기 아이는 잃었는데, 남의 아이는 온 힘으로 안아 구해낸 이 모순. 바닷가 장면은 삶의 잔혹함과 사랑의 책임이 동시에 폭발하는 지점이다. 그녀의 품은 비어 있으면서 동시에 가득 차 있다.

 

마지막 장면은 하늘이다. 첫 장면의 바닥과 반대다. 카메라가 위를 향하고, 비행기가 지나간다. 관찰자였던 카메라와, 당사자였던 클레오의 시선이 포개지는 순간. 쿠아론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집을 지탱했던 여성에게 늦은 경의를 바친다.

 

흑백은 기억의 색이다. 관찰자의 거리다. 감정을 조작하지 않겠다는 윤리다. 색이 있었다면 이 영화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흑백이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생각과 감정도 여유가 있어야 발생한다. 클레오를 따라가며 이 질문이 계속 머물렀다.

살아야지. 느낄 틈 없이 살아야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알았다. 이 영화는 클레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였다. 버티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들.

 

로마는 슬픈 영화가 아니다. 삶을 기록한 영화다. 희생이라 부르고 싶지만, 당사자에게는 그저 살아낸 하루들이었다. 감독은 그것을 뒤늦게 알아본 사람이고, 나도 이 영화를 통해 뒤늦게 알아본다. 내 안의 클레오를. 누군가의 세계를 떠받치느라 자기 세계를 세우지 못했던 순간들을.

 

영화가 끝나도 화면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처럼 오래 남는다. 이 영화를 권한다. 쉽게 보려 하지 말고, 잠시 머물러 주길 바란다. 이건 보는 영화가 아니라 견디는 영화다. 견디고 나면, 마음 어딘가에 오래 닿는 잔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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