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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몰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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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 내 옆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는 공허함. ‘내가 뭘 하고 있나하는 막막함 속에서 베케트의 몰로이를 펼쳤다. 나와 같은 길 잃음 속에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몰로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사랑 때문인지, 의무감인지, 그도 자신이 모른다고 한다. 자전거를 잃고 다리마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계속 나아간다. 기어서라도.

 

2부의 모랑은 더욱 기이하다. 몰로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몰로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찾아 헤매면서도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한다. 마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찾고 있으면서도, 그런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베케트의 문장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한 생각이 완결되기 전에 다른 의문이 시작되고, 그것이 또 다른 불확실성으로 흘러간다. 바로 이렇게 끝없이 맴도는 문장들 때문에 이 책은 읽기 어렵다고 하는데, 나 역시 마지막 장을 덮고도 무슨 내용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말하는 동시에 그 말이 거짓일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계속한다. 몰로이도 모랑도 확신 없이 멈추지 않는다.

결국 둘 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 몰로이가 어머니 집에 도착했는지 불분명하고, 모랑은 몰로이를 찾지 못한 채 돌아간다. 실패처럼 보이지만 그게 당연하게 여겨졌다. 애초에 찾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계속 헤맨다. 한때는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몰로이를 읽으니 알겠다. 끝이 와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 방황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막막함 속에서도 매일 아침 일어나 무언가를 행한다. 멈출 수가 없으니까.

 

몰로이는 언어가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말하지만 그 말들은 늘 부족하고 불완전하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진술은 의심의 여지를 남긴다. 베케트는 이런 무의미함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그냥 삶이 이런 거라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어쩌면 '알고 있었던 때'라는 것 자체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몰로이가 어머니를 찾아가면서도 왜 가는지 모르듯이, 나 역시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가야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다.

신기하게도 이 모름이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에는 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방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몰로이를 읽고 나니 그런 확신 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모호함 속에서 헤매는 것, 확신 없이 계속하는 것 자체가 가장 정직한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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