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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하루

그렇게 깎아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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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이 돌아오던 날, 공항에는 사람을 맞으러 나온 이보다 사람을 밀어내려는 말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졌으니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감독은 약자가 아니다. 연봉도 권한도 그에게 있었다. 가진 만큼 책임도 그의 몫이다. 다만 한 경기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대회 전체를 지나며 드러난 준비, 판단, 반복된 실패를 묻자는 것이다.

 

그런데 화면을 떠도는 말들은 자꾸 다른 쪽으로 갔다.

 

나가라. 다시는 오지 마라. 출입 금지.

 

솔직히 첫 짤에는 나도 웃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같은 얼굴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깎이고 있었다. 비판이라면 한 번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멈추지 않자, 비판처럼 보이던 것이 다른 무엇으로 바뀌어 있었다. 웃지 못하면서도 화면을 끄지 못한 그 시간이, 처음의 웃음보다 더 마음에 걸렸다.

 

그 많은 말 가운데 정작 무엇을 바꾸자는 말은 드물었다. 책임 구조를 어떻게 손볼지는 길고 지루하다. 대신 얼굴 하나를 향한 합성짤과 "나가라"는 짧고 통쾌하고 잘 퍼진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비판이라고 부르지 못하겠다.

 

비판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풍자와 조롱은 다르다. 풍자는 다음을 묻고, 조롱은 다음이 없다.

 

그 말이 마음에 걸린 채로, 같은 날 또 다른 뉴스를 보았다. 지역을 낮춰 부르는 고교야구장의 응원 구호였다.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나는 아이들보다 덕아웃의 어른들이 먼저 떠올랐다. 아이들은 혼자서 시대를 발명하지 않는다. 우리가 흘리고 간 말을 주워, 더 큰 소리로 돌려줄 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왜 저러느냐고 우리는 놀란다. 하지만 놀라는 어른의 얼굴이 늘 깨끗한 것은 아니다. 화면을 끄지 못하던 내 얼굴도 그랬다.

 

단체로 하는 조롱은, 그 무엇도 아니다.

 

편드는 것도 아니다. 응원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바꾸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함께 한 사람을 깎는 일이다. 한 번 걸러지지 않은 말, 지른 사람의 속만 잠시 가벼워지는 말이다.

 

문제는 그 말이 너무 잘 들리고 잘 보인다는 데 있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 준비되었는지, 누가 결정을 그르쳤는지, 같은 실패를 어떻게 끊을 것인지는 길고 더디다. 반면 얼굴 하나를 깎는 일은 짧고 선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쉬운 쪽으로 간다. 깎는 동안에는 무언가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깎고 난 자리에 남는 것은 없다.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구조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상처와, 지켜본 모두가 조금씩 거칠어진 마음이 남을 뿐이다. 분노는 다 쏟았는데, 정작 분노가 가야 할 자리는 그대로 비어 있다.

 

분노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분노는 닫힌 문을 열고, 이름 없던 고통을 세상 앞에 세운다. 그런 분노는 멀리 간다. 책임이 있는 곳까지, 바꿔야 할 구조가 있는 곳까지 기어이 간다. 조롱은 멀리 가지 못한다. 손 닿는 얼굴 하나에서 멈춰, 거기서 끝난다. 둘 다 화가 나서 터진 말이지만, 하나는 길을 떠나고 하나는 제자리를 맴돈다.

 

나도 그 길에 잘못 들어선다. 어제 남이 했을 때 저열하다 욕한 말도, 오늘 내가 미워하던 쪽을 향하면 통쾌하게 들린다. 바뀐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말이 떨어지는 자리뿐인데. 정작 그 통쾌함이 가장 의심해야 할 신호인데도, 나는 늘 한 박자 늦게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그렇게 마음이 기울 때, 잠시 손을 멈추는 것. 이 말이 무엇을 바꾸는지, 아니면 그저 누군가를 깎고 있을 뿐인지 한 번 더 보는 것.

 

비판은 해야 한다. 책임도 물어야 한다. 다만 그것이 사람을 깎는 일로만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깎아서 나아지는 것은, 끝내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앞에서 한 번 더 멈칫하는 마음만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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