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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멸종위기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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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떠돌던 종이었다. 계절을 따라, 먹이를 따라. 오래 머무르면 죽었다.

그 인간을 멈춰 세운 건 불이었다.

불이 생긴 뒤, 인간은 밤에도 한 장소에 남았다. 어두워지면 돌아왔고, 작은 불 주변으로 모여 앉았다. 거기서 기다림이 생겼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돌아온 얼굴을 보고 안도하는 감각.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돌아오고, 같은 얼굴을 반복해서 보기 위해 한 장소에 머무는 것. 어쩌면 사랑은 그때 시작된 본능이지 않을까.

 

멸종위기사랑을 들으며 이상하게 그 장면이 보였다. 노래는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자꾸 인간의 오래된 밤이 떠올랐다.

가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다고.

그 순간 사랑이 감정이 아니라 자원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단 하나만 주어진 불씨. 잘못 꺼뜨리면 다시는 겨울을 건너지 못하는 것.

 

지금은 조금 이상한 시대다.

직업도 집도 사람도 자주 바뀐다. 몇 년이면 연락망 전체가 교체된다. 사랑도, 서로의 일정이 맞을 때 시작되고 안 맞아지면 끝난다.

우리는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다 식어버렸다면, 이런 노래가 왜 마음을 건드릴까.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너무 오래 쓰이지 않아 깊은 곳으로 내려간 것 같다. 평소에는 없는 것처럼 살다가도, 어떤 문장 하나 어떤 목소리 하나에 갑자기 오래 잠겨 있던 감각이 올라오는 것.

꺼진 줄 알았던 재 속에 아직 작은 열이 남아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사랑은 지나가는 계절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 전체의 기후였다.

그리고 그 사랑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 안의 계절을 바꾸고, 이후의 문장들을 바꾸고, 음악을 듣는 방식까지 바꿔버린다.

멸종위기사랑 이라는건, 사랑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무게의 사랑을 더 이상 쉽게 만나지 못하는 시대라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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