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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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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실에는 창도 티비도 시간도 없었다.
대신 숫자가 있었다.

심박수, 산소포화도, MAP, RR.
모니터는 쉬지 않고 사람의 상태를 숫자로 번역했다.
삐, 삐, 삐.
1분에 한 번씩 울리는 경고음은 병실의 공기가 아니라 신경을 흔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을 감아도 들렸다. 사람은 소리에 이렇게 갇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계속 모니터를 봤다.
아버지를 한번 보고, 숫자를 한번 보고, 다시 아버지를 봤다.
기계는 계속 숫자를 말하는데, 그 아래에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는 젊을 때 SK 섬유공장 관리직이었다. 그 시절 공장 기계는 대부분 일본제였고, 출장도 조립도 아버지가 맡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부품이 오면 혼자 분해하고 다시 조립했다. 머리가 좋고 손재주가 좋았다. 내 유치원 행사 무대 글씨도 아버지가 썼다. 기계로 찍은 것처럼 반듯한 글씨였다.

아버지는 노래도 잘했다.
고등학교때 음악사 오디션도 봤다고 했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오래 아팠다.
하지만 아버지의 원래 모습은 계속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시한부 이야기를 듣고 들어간 절에서도 주차장을 만들고 이것저것 고쳤다. 몸은 망가졌는데 정신력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영어와 일본어를 놓지 않았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살아보려고 발버둥친 사람의 눈빛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임종실 침대 위에 오래 누워 있던 그 몸만으로 아버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심정지 후 CPR로 심장은 돌아왔으나, 의식은 없었다. 발작이 이어졌다. 약 이름들이 늘어나고 용량은 계속 올라갔다. 발작은 줄어들었고, 혈압은 내려갔다.

그런데 아버지는 생각보다 오래 버텼다.

몸 전체가 버티던 힘을 조금씩 내려놓는 과정.

나는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다.
끝이 올 것 같다가도 하루를 넘겼고, 다시 이틀을 넘겼다. 임종실의 시간은 이상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이 길어지는 시간 같았다.

아버지는 재미있었을까.

그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잘 살았냐는 질문은 너무 흔했고, 행복했냐는 질문은 너무 크다. 하지만 재미있었냐는 질문은 이상하게 사람을 생생하게 만든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고, 무슨 농담을 했고, 어떤 실패를 겪었고, 무엇을 좋아했는지까지 함께 떠오르게 하니까.

장례식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왔다.
정치권 사람들, 교회 사람들, 오래전 관계들, 잊고 지낸 이름들. 부조 명단을 정리하다 보니 빚이 많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의 빚이라기보다 관계의 빚이었다. 누군가는 직접 왔고, 누군가는 봉투만 두고 갔다. 그 명단은 아버지 장례이면서 동시에 내가 살아온 관계의 지도 같았다.

입관식을 마치고 마지막 날이 왔다.
화장이 끝난 뒤 유골함을 들었는데 오래 따뜻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람은 끝나면 차가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으로 손에 남는 건 온기였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집에 왔다.

그리고 다음 날 바다로 갔다.

장미가 피어 있었다.
햇빛이 좋았고 바람이 불었다.
며칠 동안 등 아래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오니 세상이 너무 살아 있어서 오히려 낯설었다.

나는 아버지를 바다에 보냈다.

대한해협을 건너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북극까지 갔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병실에서는 모든 것이 멈춰 있었는데, 바다에 들어간 순간부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기계가 아니라 물살과 바람이 데려가는 방향. 멀리 가겠지만 또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존재.

돌아오는 길에도 장미가 보였다.
그런 계절이었다.

기계 소리로 남고,
바다 냄새로 남고,
오래된 지도와 손재주와 어떤 계절의 빛으로 남는다.

마지막에는 고마운 사람들이 생각났다.

엄마 곁을 지켜준 목사님과 친구들.
임종실에서 아버지 몸을 만져주던 간호사들.
멀리 프랑스에서 몇 번이고 날아왔던 작은누나.
조용히 와준 사람들.

아버지를 보내는 동안 나는 계속 누군가의 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글은 독자가 없다.
견디기 위한 것이고, 붙들기 위한 것이다.
내가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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