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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몽글몽글, 그냥 사람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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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그 옛날 사랑의 스튜디오부터 돌싱, 이제는 부모님까지 함께 나오는 합숙 연애 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다. 허용된 관음과 뒷담화는 은근한 우울감과 결속을 강화해 도파민을 배출시킨다.

그래서 이효리의 몽글상담소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다소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마치 빈곤 포르노처럼 약자에게서 어떤 도파민을 탈취하려고 하는지.

내가 틀렸다. 몽글상담소는 다르다.

이건 도파민이 아니라 온도다. 따뜻한 데 오래 앉아있으면 일어나기 싫은 것처럼, 자극이 아니라 온기가 우리를 붙잡는다.

그 온기가 어디서 오는지 처음엔 몰랐다.

 

발달장애인이 화면에 등장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말아톤이 있었고, 굿닥터가 있었다. 근데 그 자리엔 늘 보호자가 옆에 있었거나, 천재적인 능력이 함께 따라왔다. 특별해야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혹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화면에 존재할 수 있었다.

몽글상담소는 처음으로 그 공식을 버렸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곁에 보호자도 없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떨리는 청년이 있을 뿐이다.

 

첫 만남 앞에서 떨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말이 입 안에서 두 번 세 번 굴러다니다 결국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웃긴 것도 아닌데 혼자 웃고, 괜히 손이 어디 있어야 할지 모르는 그 시간. 그게 사랑의 입구다.

지능의 문제가 아니다. 스펙의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입구 앞에서 한 번쯤 신발 끈을 고쳐 맨다. 안 묶어도 되는데, 그냥 시간이 필요해서.

비장애인들은 그걸 숨기려고 평생 훈련한다. 이 친구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내놓는다. 그러니까 보는 사람 심장이 더 쫄리는 거다. 제발 잘 됐으면, 하고.

 

이효리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화려한 MC가 아니다. 가르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그냥 나도 저랬다는 듯이. 사랑 앞에서 서툴렀던 적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조용한 눈빛으로.

이효리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냥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는 사람이다. 선언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산다. 근데 그 삶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의식 있는 척하는 사람은 박수받을 때만 나타난다. 이효리는 박수가 확정되지 않은 자리에 먼저 앉았다.

 

“2세는요?”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걱정이 아니다. 거부감을 점잖게 포장한 언어다. 진짜 복지 걱정이라면 순서가 다르다. 연애를 막을 게 아니라 지원 체계를 만들라고 사회에 요구해야 한다. 근데 그 사람들은 그 말은 안 한다. 처음부터 복지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찌질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반박이 아니다. 존재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은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거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보여주면서.

 

이 프로그램을 만든 PD의 남동생이 발달장애인이다.

생각해 보지 않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그 문장 하나가 제작의도 전부다. 설명도 설득도 논쟁도 아니고 그냥 카메라를 켜놓았을 뿐인데, 보는 사람이 스스로 알아버린다.

, 똑같구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다 똑같구나.

 

어쩌면 오늘 화면 속 누군가는 처음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나도 저럴 수 있구나, 하고.

발달장애 청년 당사자로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 프로그램은 만들어질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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