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참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다. 착한 아이, 약삭빠른 아이, 괜히 큰소리만 치던 아이,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던 아이, 앞과 뒤가 달랐던 아이. 그때는 그저 철없는 시절의 모습이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 다들 비슷해질 거라고, 자연스럽게 성숙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묘한 기시감이 반복된다. 모두가 사회적 역할과 이해관계를 지닌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보면 어린 시절 교실에서 보았던 그 모습들이 형태만 바뀐 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에 나서던 아이는 여전히 중심에 서는 자리를 찾고, 눈치를 보던 아이는 여전히 상황을 재며 움직이고, 책임보다 인정받기를 원하던 아이는 여전히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달라진 것은 사람 자체가 아니라 환경과 표현 방식일 뿐이다. 그때는 친구 관계였고 지금은 사회적 관계가 되었으며, 그때는 감정으로 드러났던 태도가 지금은 이해관계라는 언어로 포장되었을 뿐이다. 예의를 배우고, 조심스러운 말투를 익히고, 역할에 맞는 얼굴을 갖게 되는 과정. 그러나 그 안쪽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기질과 습성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 또한 여러 모습 가운데 몇 가지를 비율처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의 선택 방식, 관계를 대하는 태도, 감정의 방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정돈된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런데 이 기시감이 가장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의 관계 문제를 전문가가 해부하는 장면을 마주할 때다. 심리 상담이든, 방송이든, 책이든 형식은 달라도 구조는 같다. 한쪽엔 엑스레이를 든 전문가가 있고, 다른 한쪽엔 자신의 속을 내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필름 위에는 언제나 비슷한 형상이 찍혀 있다.
성인 대 성인으로서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가혹한 직설. 전문가라는 권위가 없었다면 당장 싸움이 났을 법한 서늘한 대담. 당사자들은 기분이 상하고 반항심이 턱끝까지 차오르면서도, 그 권위 앞에 마지못해 듣는 척을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카메라가 꺼지면, 혹은 상담실 문을 나서면, 그들은 다시 같은 변명을 반복하며 지독한 자기합리화의 굴레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서글픈 기시감이 든다. 어릴 적 교실 구석에 있던 그 얼굴들이 몸만 커서 그대로 서 있기 때문이다. 못된 놈, 비겁한 놈, 얍삽한 놈. 성숙함이라곤 배운 적 없는 그 부류들은 자기가 맞다는 착각 속에 제멋대로 살다가, 이제는 타인을 갉아먹는 자신의 방식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타인을 괴롭히는 본성은 그대로인데, 나이와 직함만 달라졌을 뿐이다.
물론 전문가의 처방은 정확하다. 그 처방을 지독하게 지켜낼 수만 있다면 누구든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준이 되는 이들이나 그 진실을 보며 자신을 경계할 뿐, 정작 바닥에 고인 당사자들은 어제와 같은 지옥을 반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전문가의 눈에 비친 그들은 고쳐 써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위해 반드시 분리되어야 할 대상일 뿐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냉정한 사실 하나다.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자동으로 성숙해지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지만, 성숙은 저절로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스스로 다듬어 가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은 복잡해졌지만 사람의 본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창한 대의나 명분보다 각자의 몫과 삶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며, 그 안에서 관계를 맺고 선택을 반복한다.
이 냉정한 통찰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하나다. 고쳐지지 않을 어른아이들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무례함과 비겁함이 나의 잘못이 아님을 깨닫는 것.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수정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덧붙여지고 다듬어지는 것.
그렇다면 성장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오래된 모습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 동시에, 끝내 다루어지지 않는 타인의 오래된 모습을 알아보고, 그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 그것이 미성숙한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하고도 강력한 생존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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