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앱이 없던 시절, 동네 식당 계산대 옆에는 그냥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그 전화는 주문을 받고, 배달을 부르고, 가끔은 단골과 수다를 나누는 창구였다.
삐걱거리는 수화기 너머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사장님은 새벽에 시장에 나가 재료를 사고, 낮에는 불 앞에 서 있었고, 밤에는 정산을 했다.
고단했지만 분명한 것이 있었다. 그 장사는 자기 손 안에 있었다.
손님도, 배달도, 계산도, 책임도 모두 자신의 몫이었다.
지금 계산대에는 전화기 대신 태블릿이 놓여 있다.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린다. 주문은 많아졌다.
그러나 사장님의 표정은 예전보다 가볍지 않다.
매출은 늘었는데 손에 남는 돈은 비슷하거나 줄었다고 한다.
재료비와 인건비는 그대로인데, 매출의 상당 부분이 자동으로 가게 밖으로 빠져나간다.
중개수수료, 결제수수료, 광고비, 배달비 분담…. 이름은 다르지만 흐름은 같다.
돈은 가게에서 플랫폼으로 흘러간다.
처음 배달앱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혁신이라 불렀다.
손님은 편했고, 가게는 새로운 고객을 얻었다.
서버를 만들고, 결제를 안정화하고, 배달망을 짜는 데 비용이 든다는 설명도 이해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거래량이 수백만 건, 수천만 건이 되어도 비용 구조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대신 더 정교해졌다.
노출이 곧 매출이 되면서, 광고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되었다.
상단 노출, 추천, 배너, 이벤트….
광고를 하지 않으면 주문이 뚝 끊기고, 광고를 하면 비용이 커진다.
그래서 많은 사장님들은 이렇게 말한다.
“광고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됐다.”
코로나 이후 배달은 일상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배달 전문업체와 대행사가 빠르게 늘었다.
시장 자체는 커졌지만, 룰은 플랫폼이 정했다.
주문 흐름, 노출 방식, 정산 방식, 배달 동선까지 모두 플랫폼의 설계였다.
가게는 점점 손님이 아니라 화면을 상대하게 되었다.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었다.
스마트폰 몇 번의 터치로 음식이 도착한다.
그러나 그 편리함의 대가는 배달비 인상과 메뉴 가격 상승으로 돌아왔다.
배달비는 예전의 ‘서비스’가 아니라 별도의 비용이 되었고,
같은 음식도 매장보다 배달앱에서 더 비싸졌다.
편리함은 분명 커졌지만, 비용도 함께 커졌다.
배달기사들은 그 편리함의 최전선에 섰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건수를 처리해야 했고,
평점과 알고리즘은 속도를 강요했다.
사고는 늘었고, 부상도 늘었다.
젊은 노동자들의 위험이 일상이 되었다.
플랫폼은 효율을 말했지만, 현장은 생존을 말하고 있었다.
이 모든 구조 속에서 플랫폼은 말한다.
“우리는 기술과 연결을 제공했을 뿐이다.”
그러나 기술과 연결이 시장을 지배하고,
그 지배력이 가격과 룰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질서 그 자체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말해야 한다.
배달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배달이 사람을 지배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그 출발점으로 최소한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 총비용의 투명화.
중개수수료, 광고비, 배달비 분담, 결제수수료가 한눈에 보이게 공시되어야 한다.
무엇이 선택이고 무엇이 필수인지, 무엇이 플랫폼의 몫이고 무엇이 가게의 몫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숫자가 숨겨져 있을수록 권력은 더 커진다.
둘째, 비용 전가 금지.
플랫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가게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알고리즘을 만들고, 서버를 운영하고, 마케팅을 하는 비용이
왜 음식점의 원가로 전가되어야 하는가.
편리함의 설계자는 그 대가를 스스로 져야 한다.
셋째, 노출·정산 룰의 공정화.
광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퇴출당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가게의 품질과 평판이 매출을 결정해야지, 광고 예산이 생존을 좌우해서는 안 된다.
이 세 가지가 최소한의 바닥이라면, 그 위에 공공의 역할이 놓여야 한다.
지자체마다 음식 주문 공공앱이 있다.
수수료는 낮다고 한다.
그러나 입점 가게는 적고, 홍보는 부족하며, 시민들은 존재조차 모른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취지는 좋았으나,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공공앱의 문제는 단순히 예산 낭비가 아니다.
대안이 되지 못한 공공성의 실패다.
싸게 만들었지만 불편했고,
공익을 말했지만 사용자를 얻지 못했다.
그 결과 민간 플랫폼의 독점을 견제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공공앱을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제대로 만들자는 것이다.
공공이 민간처럼 빠를 수는 없다.
그러나 느려도 든든한 선택지는 될 수 있다.
첫째, 공공앱은 중개를 중심에 두고,
배달 인프라는 기존 민간망을 활용하는 분업 구조가 필요하다.
공공이 모든 것을 직접 하려다 느려지는 대신,
주문·결제·정산의 공정한 창구가 되는 것이다.
둘째, 공공앱은 단순 배달앱이 아니라
지역 생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역상품권, 공공쿠폰, 전통시장, 공공기관 주문이
이 플랫폼을 통해 흐른다면,
사장님들에게는 현실적인 매출 통로가 생긴다.
그때 공공앱은 ‘싸지만 텅 빈 앱’이 아니라
실제 장사를 지탱하는 인프라가 된다.
셋째, 우리는 또 다른 대안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가게가 한 번만 등록하면
여러 배달앱에 동시에 노출되는 공동 데이터 허브다.
가게는 하나의 기본 창구에 메뉴와 가격을 올리고,
플랫폼들은 그 데이터를 활용해 경쟁한다.
이 구조가 자리 잡으면,
플랫폼은 더 이상 수수료로 가게를 압박하기보다
서비스와 품질로 경쟁해야 한다.
당장은 법과 기술의 장벽이 있지만,
이 방향이야말로 장기적으로 플랫폼 종속을 줄이는 길이다.
결국 핵심은 하나다.
사장님이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배달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편리함을 버리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편리함이
누군가의 삶을 짓누르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태블릿 앞에 선 사장님이
화면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쓸 도구를 고르는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매일 새벽 장을 보고,
불 앞에 서고,
밤늦게 불을 끄는 사람들.
그들의 노동이
플랫폼의 통행료가 아니라
존중받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이 글의 끝이자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