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다

숨지 않는 사람들

반응형

 

 

생방송으로 진행된 업무보고를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정치적 입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의 태도에 대한 감정이었다. 화면 안에서 질문이 질문답게 오갔다. 답변이 미리 준비된 문장처럼 매끄럽지 않았다. 생각의 흔적이 말 사이로 튀어나왔고, 숫자를 찾느라 잠깐 멈칫하기도 했다. 이해되지 않는 대목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어떻게 된 겁니까?" 물음이 계속 이어졌고, 답하는 쪽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했다. 그 솔직함이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순간, 오랜만에 '일하는 현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를 받는 쪽도, 하는 쪽도 서로를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생방송이라는 형식은 사실 쌍방에게 불리하다. 질문하는 쪽도 실수할 수 있고, 답하는 쪽도 준비 안 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편집으로 다듬을 시간도, 매끄럽게 포장할 여지도 없다. 실시간으로 생각이 드러나고, 멈칫거림이 기록으로 남는다. 그런데도 굳이 이 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일을 하려고. 숨을 공간을 없애려고. 국민 앞에서 서로 피할 수 없게 만들려고.

 

이건 공직 사회가 원래 작동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먼저 전례를 찾는다. 다른 기관에서 한 적이 있는지, 실패한 사례는 없는지,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지를 먼저 따진다. 실패는 경험이 아니라 책임이 되고, 책임은 곧 인사상 불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가만히 앉아 정해진 일만 반복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평가를 받는다.

 

이 구조 안에서 묘한 기술이 발달한다. 생산직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서비스직이지만 서비스의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기술. 늘 회의에는 참석하고 결재에는 이름이 올라가지만, 정작 일이 남기는 흔적은 없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의 바깥에 서 있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래 살아남는다. 이들은 게으르다기보다 구조에 최적화된 사람들이다. 투명한 유리처럼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고, 일을 해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개된 업무보고는 이 구조를 불편하게 만든다. 질문은 기록으로 남고, 답변은 국민 앞에 노출된다. 투명한 유리 뒤로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 대신 누가 준비했는지, 누가 고민했는지, 누가 일을 이해하고 있는지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은 불편하지만, 행정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국민이 최소한 무엇이 논의되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게 된다. 숨는 것이 미덕이 되는 순간, 공직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공공 영역의 도전은 사기업과 다르다. 사기업의 실패는 기업 내부에서 정리된다. 손실은 주주와 회사가 감당하고, 방향은 수정하거나 접으면 된다. 하지만 정책 하나, 사업 하나의 실패는 국민 전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공직에서의 도전은 훨씬 더 어렵고, 훨씬 더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용기 없는 성실함은 여기서 가장 위험한 태도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공공의 영역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대처하고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그래서 공직자는 도전해야 한다. 준비된 질문을 피하지 않고, 문제를 드러내고, 수정해야 할 것은 빠르게 고쳐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그게 공직자의 자세다. 이건 용기 없는 열정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각오에 가깝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물론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을 받게 되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서라도, 숨지 않고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한다면 배울 것이 많다.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는 일을 고를 때 늘 같은 기준을 떠올린다. 이 일이 재미있는가, 이 일을 통해 내가 배우는가, 그리고 이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 존경할 만한가. 월급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하루를 견디기는 어렵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 실패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질문이 살아 있는 자리에 있고 싶다.

 

질문이 죽어있는 자리는 쉽게 알아챌 수 있다. 회의에서 "의견 있으신 분?" 하고 물었을 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곳. 다들 정답을 알고 있지만 누가 먼저 말할지만 기다리는 곳. 질문이 형식이 되고, 대답이 의례가 되는 순간, 그 자리는 이미 죽어있다. 나는 그런 자리에 있고 싶지 않다. 질문이 진짜 질문이고, 모른다고 말할 수 있고, 틀려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대선이든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같다. 일을 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태도를 보고, 구호가 아니라 질문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실패의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된 사람을 선택하는 것, 그게 시민의 역할이다. 과거의 경력만으로 포장된 이력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 철학 없이 자리만 채우려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국민과 함께 걷겠다는 사람이다.

 

공직은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가장 불안정해야 하는 자리다. 그 불안정함이 질문을 낳고, 질문이 변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결국 국가를 움직인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책임을 안고서라도,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게 내가 일을 대하고, 사람을 고르는 기준이다.

반응형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사결정은 합리적인가  (2) 2025.12.18
말 않던 시간  (0) 2025.12.16
겹쳐 흐르는 시간  (1) 2025.11.25
문틈의 기척  (0) 2025.11.20
인적 쇄신  (1) 2025.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