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여유로운 출근길. 느긋한 아침 식사를 하며 본 '개늑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은 원래 해 질 녘의 애매한 순간을 가리킨다. 빛과 어둠이 겹치고,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시간.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그 말이 개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오히려 이 시간이 인간의 부족함을 더 잘 드러내는 것 같다.
프로그램 속 사연들 중 많은 경우는 비극이라기보다 방치에 가깝다. 조금만 관찰했으면, 조금만 공부했으면, 조금만 시간을 썼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이야기들.
사람들은 개를 문제라고 말하지만, 화면을 보면서 나는 자꾸 다른 것이 보인다. 환경을 설계하지 않은 인간, 자기 감정을 관리하지 못한 인간, 선택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인간. 개는 거의 문제가 없다.
그들은 개 종의 특성을 파악하지 않는다. 타고난 성향을 무시하고,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하고, 안 되면 문제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건 개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그렇다. 상대의 본성을 이해하지 않고, 내 기준에 맞추려 하고, 안 되면 문제라고 부르는 것.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제받는 상태를 더 편안해하는 것 같다. 스스로 결정할 용기도 없으면서, 누군가는 나를 대신 이해해주고, 대신 책임져주고, 나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자유는 말로만 소비되고, 삶은 늘 누군가의 기준에 기대어 흘러간다.
변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바꾸고 싶은 건 결과뿐이다. 내가 속한 집단, 내가 지지한 선택, 내가 믿어온 해석이 틀렸다는 사실은 차라리 현실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자주 틀린 자리에 머문다. 그 자리를 떠나면 내가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자유를 원하면서 통제를 편안해하는 모습, 변화를 말하면서도 정체성 붕괴를 두려워하는 모습. 나는 그 안에서 같은 부족함을 본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보다, 선택당하는 것을 원하는 우리의 모습.
사랑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계산기가 돌아간다. 이번엔 내가 참았고, 이번엔 내가 더 줬고, 이쯤이면 돌아와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랑이 거래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낀 그 첫 번째 순간. 그때부터 사랑은 투자가 되고, 상대는 채무자가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게 아니라, 회수 가능한 거리에서 베푸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계산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있다. 이만큼 주다 보면 내가 없어질 것 같다는 공포. 정체성이 침해받는 느낌.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선을 긋는다.
개를 인형처럼 키우려는 태도와 아이를 말 잘 듣는 존재로 만들려는 욕망, 연인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고정하려는 집착. 나는 그 안에서 같은 것을 본다. 살아 있는 존재를 관계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시선.
개에게 '앉아'를 가르치는 순간, 아이에게 '조용히 해'를 외치는 순간, 연인에게 '왜 말 안 했어?'를 따지는 순간. 이 세 장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자율성이 내 안정감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찰나.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통제 가능한 거리를 원하는 것 같다. 가까우되 예측 가능하고, 친밀하되 위협적이지 않은.
그 거리가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문제'라는 이름을 붙인다. 개의 문제, 아이의 문제, 관계의 문제. 하지만 나는 자꾸 다른 것이 보인다. 거리를 설계하지 못한 인간.
우리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만든다. 그리고 더 자주, 생각했기 때문에 이미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한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생각은 양심이 아니라 면죄부가 되는 것 같다.
선택은 가볍게, 책임은 느리게, 사랑은 말로만 깊게. 이 불균형 속에서 사람도, 개도, 관계도 함께 망가진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남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안다.
나도 아직 그 터널에서 허덕거리고 있다. 나를 벗어나지 못하고, 돌려받기를 원하고, 어디까지 해야 하나 답답해한다. 선택 이전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이미 선택한 뒤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 덜 잔인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적어도 선택과 책임 사이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질 것 같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가 지면 끝난다.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그 경계 어딘가에서, 선택과 책임 사이의 어둠을 더듬고 있다. 구분할 수도 없고, 당장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는 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앞으로의 시간이 같지 않기를 나는 스스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