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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겹쳐 흐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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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무에 겹쳐 담긴 계절의 색

 

 

한 그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었다.

멀리서 내려다보며 다가서니

연두, 초록, 노랑, 빨강이

그라데이션처럼 번져간다.

 

가지 끝 붉은 것은 십일월의

마지막 고집을 품고,

중심부 노란 것은 시월의

체념을 받아들였다.

그 사이의 초록은

칠월의 기억을 더듬고,

맨 꼭대기 연두는

사월의 떨림을 아직 간직했다.

 

언제부턴가 하나의 계절 안에

온전히 머물 수 없게 되었다.

봄이 끝나기 전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기 전에 겨울이 왔다.

 

이 나무는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몸 안에 모든 시간을 품고

어느 것도 숨기지 않는 존재.

 

은행잎 노란 카펫 위를 걷는데

목덜미는 차갑고

햇살은 따스하다.

이것이 십일월이라는

부정확한 이름.

 

우리는 이제

계절을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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