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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하루

말이 증거가 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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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민감함은 장마 전의 날씨를 닮았다. 아직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는데 몸이 먼저 안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셔츠가 등에 붙고, 사람들은 저마다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본다. 어떤 관계에서 나는 그 날씨를 먼저 감지하는 사람이었다. 농담 하나, 늦은 답장 하나, 말끝에 붙은 조사 하나에서 습기를 읽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불쾌한, 그런 계절이 관계 안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처음의 길은 곧았다. 넓지 않아도 충분했고 빠르지 않아도 닿았다. 그 길이 어느 해부터 포장을 잃었다. 자갈이 생기고, 굽이가 생기고, 나중에는 산길이 되었다. 길이 험해진 것인지 내 걸음이 조심스러워진 것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말을 오래 만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건너도 되는가. 이 침묵은 비겁한가. 이 정도의 솔직함은 정직인가 공격인가. 문장을 쓰기도 전에 문장의 뒷일을 계산했고, 대화는 시작되기 전에 피로했다. 우산을 펴기도 전에 어깨가 젖어 있는 사람처럼.

 

밤이 되면 낮에 지나간 말들이 돌아온다.

 

나는 내 수준만큼의 동굴을 파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벽에는 그날 들은 문장들이 걸린다. 걱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온 문장, 별 뜻 없었다는 문장, 네가 예민하다는 문장. 나는 그것들을 분류하려 했다. 거짓과 실수, 비판과 조롱, 농담과 모욕, 배려와 통제, 침묵과 방치. 말의 성분표를 만들 수 있다면 덜 다칠 것 같았다. 무엇이 나를 베었는지 정확히 이름 붙일 수 있다면, 다음에는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까지 나누고 있었다. 긍정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그 사이의 애매한 사람. 복잡한 사람을 간단한 방에 넣어두면 잠깐 편했고, 나는 그 편함을 오래 빌렸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잘리지 않았다. 세련된 말로 사람을 소모시키는 이가 있었고, 투박한 말로도 끝내 상대의 체면을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 언어영역 점수가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혼자 하는 레벨업에 가깝다. 누가 대신 올려줄 수 없고, 시험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경험치는 다친 만큼만 쌓인다. 나는 그 사실이 오래 억울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자리에서 나만 매번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다 알았다. 세상이 언어를 뭉뚱그리는 것을 불쾌해하면서, 나 또한 사람을 긍정과 부정 두 칸으로 뭉뚱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게 된 밤에는 동굴 벽이 조금 더 넓어진다. 걸어둘 문장이 하나 늘어난다. 이번에는 남의 문장이 아니라 내 문장이다.

 

어느 저녁이 있었다. 어디였는지는 쓰지 않는다. 누구였는지도 쓰지 않는다. 이 글에서조차 자리를 특정하는 순간, 이 문장들이 다시 증거로 채택된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안다. 다만 이것만 쓴다. 그날 문장 하나가 건너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물을 한 모금 마셨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진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주 입을 닫는다. 관계를 지키려고 닫고, 더 망치지 않으려고 닫는다. 말하면 시비가 되고 말하지 않으면 거리가 된다. 어느 쪽도 나를 구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에는 침묵이 덜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침묵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도 관계 안에서 제 일을 한다. 식탁의 빈 의자처럼, 참석하지 않았는데 계속 보인다.

 

그리고 이것도 써야 공평하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 저녁이었다. 어떤 자리에서 문장 하나를 건넸고, 상대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무엇을 삼키는 동작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모르는 척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여기 쓰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다.

 

동굴에서 나는 하지 않은 말과 해버린 말을 나란히 눕힌다. 말했어야 했던 문장은 차갑고, 말해버린 문장은 뜨겁다. 이름을 지운 자리끼리는 이상하게 닮아 있다. 어느 쪽에도 손을 오래 둘 수 없어, 둘 사이를 오가며 밤을 보낸다.

 

그래도 완전히 입을 잃고 싶지는 않다. 말 때문에 다친 사람이 말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말이 아니면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이 글의 문장들도 하나씩 만졌다. 건너도 되는지 물으면서. 몇 개의 단어를 썼다가 지웠고, 지워진 자리는 나만 안다.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얼굴 앞에서 삼킨 문장과, 어떤 얼굴에게 건네고 만 문장이.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당신도 끝내 다 쓰지는 못할 것이므로.

 

 

 

나는 지금도 칸을 만든다. 단순하다는 소리는 듣기 싫고 결론은 빨리 내고 싶어서, 사람을 넣을 칸을 편법처럼 늘린다. 칸이 늘수록 만나는 사람은 줄었다.

동굴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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