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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하루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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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전문가를 찾아간다. 상담을 받고, 강연을 듣고, 책을 읽는다. 평소에는 남의 말을 대충 흘려듣던 사람도 그런 자리에서는 조용해진다.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한다. 마음에 걸린 문장은 핸드폰에 남긴다. 강연이 끝날 무렵이면 얼굴도 조금 달라진다. 오래 막혀 있던 곳이 하나쯤 뚫린 듯한 얼굴이다.

 

며칠 뒤 다시 만나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같은 사람과 같은 이유로 다투고, 같은 방식으로 일을 미루고,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그렇다고 그날의 감동이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움직인 마음이 삶으로 곧바로 따라가는 것이 아닐 뿐.

 

사람은 마음이 움직였다고 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곧장 바꾸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의 삶을 계속 살아낼 수 있도록 마음의 자리를 조금씩 옮긴다. 상담이나 강연, 책이 어떤 사람에게는 실제 변화의 시작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까지의 삶을 조금 덜 낯설게 만드는 말이 된다. 관계는 그대로인데 그 관계를 바라보는 문장이 달라지고,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부르는 말이 달라진다.

 

지나온 시간을 사실 그대로 들고 사는 일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젊은 날에는 실패였던 일이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으로 읽히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일이 훗날 외로움이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건은 이미 끝났는데 그 의미는 한 사람 안에서 몇 번이고 달라진다.

 

그것을 모두 자기합리화라고 부르기에는 인간의 시간이 너무 길다. 과거를 조금도 고쳐 읽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어떤 시절과는 끝내 함께 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기억에도 생계가 있다.

 

그래서 사람은 조언을 구하면서도 이미 원하는 답을 품고 간다. 떠날 사람은 떠나도 된다는 말을 기다리고, 남을 사람은 조금 더 있어도 된다는 이유를 찾는다. 무엇을 몰라서 묻는 것 같지만 때로는 오래전부터 믿고 있던 것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고 싶어 한다.

 

반대편에는 전문가가 굳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분명하지 않은 말과 짧은 영상에서 스쳐간 지식, 누군가에게서 건너온 문장이 뒤섞인다. 출처는 흐려졌는데 확신은 또렷하다. 몇 번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어느새 자기 생각처럼 익숙해진다.

 

사람은 "모르겠다"는 상태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아는 것 몇 개를 이어 설명 하나를 만드는 쪽을 택하곤 한다. 설명이 생기면 잠시라도 세계가 정돈된 것처럼 보인다. 알고 있는 것은 늘어나는데 모른다고 말하기는 더 어려워지는 이유도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설명하는 말도 부쩍 많아졌다. 자존감과 상처, 경계와 소진, 애착과 성향을 이야기한다. 예전에는 이름조차 없었던 것들에 말이 생긴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이유도 모른 채 참는 것보다 아픈 곳을 알아보는 편이 낫다.

 

다만 설명은 행동보다 빠를 때가 있다. 상처를 준 뒤에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말할 수 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에도 사정이 있으며, 화를 낸 데에도 이유가 있다. 그 말들이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맞는 말일 때가 많아서 더 복잡하다. 듣고 있으면 이해는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해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이 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왜 그랬는지 서로의 사정을 한참 설명하고 나면 관계가 한 고비를 넘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직 많지 않은데 말은 벌써 그다음 장면의 표정을 하고 있다. 입만 살아났다는 말은 어쩌면 말을 많이 한다는 뜻보다, 삶이 따라오기 전에 말로 자신의 모습을 먼저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렇다고 말을 의심할 수만도 없다. 말 한마디로 겨우 넘긴 날이 있고, 뒤늦게 들은 설명 하나로 오래된 오해가 풀리기도 한다. 자신을 이해하게 해준 문장이 바로 그 자신을 변하지 않아도 견딜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과 사람을 제자리에 머물게 하는 말은 생각보다 자주 같은 얼굴을 하고 온다.

 

강연이 끝날 무렵 달라졌던 얼굴도 그래서 조금 다르게 보인다. 삶은 아직 제자리에 있는데 마음은 먼저 어디쯤 다녀온 얼굴이었다. 변화에 필요한 시간은 시작되지 않았는데 사람은 잠시 달라진 자신을 경험한다. 그 감각만으로도 한동안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을 가볍다고만 말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실제로 그리 가볍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도 놓지 않았고 안전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랑받고 싶고,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삶의 큰 구조에서는 오래 버티면서 다른 곳에서는 자주 숨을 고른다. 잠깐 웃고, 잠깐 울고,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하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가벼운 순간은 무거운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무게를 계속 들고 가기 위해 생긴 틈처럼 보인다.

 

어느 사이 우리는 자기 삶을 수시로 손보는 데 익숙해졌다. 감정을 정돈하고, 설명을 고치고, 다시 생활로 돌아간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 실패한 선택에도 살아갈 이유를 붙이고, 상처에는 견딜 수 있는 이름을 붙인다. 오늘이 버거우면 오늘을 넘길 만큼만 자신을 달랜다.

 

바로 그 힘 때문에 어떤 것들은 더 오래 남기도 한다. 불편한 관계에는 사정이 생기고, 오래 미룬 결정에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이유가 붙는다. 놓지 못한 것에는 책임감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다. 그 설명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삶에는 실제로 사정이 있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

 

다만 그렇게 자신을 조금씩 손보며 살아가다 보면 어떤 것들은 망가지지도 않은 채 오래된다. 끝난 것도 아니고 시작된 것도 아닌 관계, 마음속에서는 오래전에 결론이 났지만 아직 움직이지 않은 선택, 견딜 만해서 계속 견뎌온 생활 같은 것들이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한 이유가 된다. 사람은 어제까지 살아온 자신을 오늘 하루 만에 부정할 수 없고,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은 채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없다. 자신이 만든 삶 안에서 다음 날을 맞아야 한다. 그러니 설명하고, 조금 잊고, 필요한 만큼 기억한다. 그것이 자신을 속이는 일인지 살리는 일인지는 그 순간에는 좀처럼 갈리지 않는다.

 

나흘 뒤 그는 다시 같은 사람과 다투고, 오래된 습관 하나쯤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핸드폰 사진첩에는 그날 남겨둔 문장 하나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분명 필요했던 말이었을 테고,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도 있다.

 

수천 장의 사진 사이에서 끝내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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