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울산의 하루

미워할 필요 없다

반응형

 

 

통도사, 깊은 암자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웅전 가까이를 천천히 돌며 몇 곳에 인사를 하고, 한 곳에는 잠시 앉아 있었다.

 

사람이 적지 않았는데도 붐빈다는 느낌은 없었다. 절에서는 종종 그렇다. 사람이 많아도, 적어도. 오래된 전각과 나무, 돌과 마당 사이에 들어서면 사람의 존재는 조금 작아진다. 누가 조용히 하라 이른 것도 아닌데 목소리는 낮아지고 걸음은 느려진다.

 

그것을 경건함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안에서는 내가 가지고 들어간 것들이 잠시 제 크기를 잃는다. 오늘 해야 할 일도, 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도, 마음 한쪽에 걸려 있던 사람도 바깥에서만큼 크지는 않았다. 절이 무엇을 준 것이라기보다, 내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조금 내놓게 한 쪽이랄까.

 

날은 좋았다. 볕에는 아직 여름이 남아 있었지만 바람은 먼저 가을로 건너가 있었다. 백일홍은 붉었고, 오래된 기와에는 이끼가 앉았고, 계곡에는 물이 흘렀다.

 

한 곳에 앉았다. 무엇을 생각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제 자리를 덜 차지하고 있으면, 평소 뒤로 밀려 있던 것들이 앞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얼마 전 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처음엔 다른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가 살아온 이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잘나가다 어려움을 겪고 다시 일어선, 그런 의미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실제로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심정지가 왔고, 20분 가까이 생사의 경계에 있었다고 했다. 쓰러질 때의 느낌도, 어디론가 가는 듯했던 순간도, 구급차 안에서의 기억도 이야기했다. 다시 같은 일이 오면 이번엔 어렵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20분이라는 숫자를 오래 생각했다. 평소의 20분은 쉽게 사라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다가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가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도 그만큼은 흘러간다.

 

그런데 심장이 멈춘 사람의 20분이 내가 아는 20분과 같은 길이일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간에 무엇을 보았는지는 들을 수 있어도, 그 시간을 함께 건널 수는 없다.

 

그 이야기 가운데 내게 남은 말은 하나였다.

미워할 필요 없다.

 

처음엔 흔한 말로 들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서 그 문장의 한 단어가 자꾸 걸렸다. '필요'. 그는 용서하라 하지 않았다. 미워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필요가 없다고 했을 뿐이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에는 여전히 나와 네가 있다. 잘못한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이 있고, 누가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남아 있으며, 마지막에는 상대를 용서할지 말지를 내가 정한다.

 

그런데 '미워할 필요 없다'에는 상대보다 내가 남는다.

 

미움이 나쁜 감정이라는 뜻은 아니다. 살다 보면 미워할 만한 사람도 생긴다. 오래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말이 있고, 생각하면 다시 속이 뒤집히는 일도 있다. 그런 감정을 억지로 지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을 성숙이라 여기지 않는다. 미워할 만해서 미워하는 것이다.

 

다만 미움은 오래 지니고 있을수록 조금 이상해진다. 처음엔 분명 상대가 만든 감정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대 없이도 혼자 움직인다. 밥을 먹다가, 운전을 하다가, 전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래전 한마디가 불쑥 끼어든다. 그 사람은 내 앞에 없는데 내 하루에는 계속 나타난다.

 

미움이 오래되면 상대의 일이 아니라 내 생활의 일부가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 질문은 달라진다.

이것이 아직도 내게 필요한가.

 

그가 그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모른다. 마음대로 의미를 완성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20분은 그의 것이다.

 

싫은 것은 여전히 싫고, 화날 때는 화가 난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지나간 일을 다시 꺼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말은 듣고 지나간 뒤에야 시작된다. 그때는 별것 아니었던 말이 며칠 뒤 불쑥 돌아온다.

 

자려고 누웠을 때가 그렇다. 생각이 끊이지 않는 밤이 있다. 낮에는 끝난 줄 알았던 일들이 불을 끄면 되돌아온다. 오늘의 일에서 몇 년 전 일로 건너가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 생각 하나가 다음 생각의 꼬리를 물며 점점 멀리 간다.

 

나는 그 고리를 끊으려 어떤 장면을 떠올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내가 고른 장면이 아니다. 어느 순간 이미 한 장면이 나와 있다.

 

매번 같지도 않다. 어떤 날은 오래전의 한때이고, 어떤 날은 특별할 것도 없던 평범한 순간이다. 얼굴이 먼저 나올 때도 있고, 장소만 남아 있을 때도 있다. 왜 하필 그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그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하나둘 길을 잃는다. 문제가 풀린 것도, 걱정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생각이 더는 다음 생각을 데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이 든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이 오래 보관해둔 것은 꼭 같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낮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이,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면 먼저 나온다.

 

내가 고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에 걸린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장면이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통도사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백일홍은 아직 여름 한가운데처럼 붉었고, 바람은 이미 다음 계절에 가 있었다. 둘이 한자리에 있었다.

 

그날 절에서 무엇을 깨달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죽음 가까이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삶의 순서까지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내 것이 아닌 경험에서 건너온 말 하나가 남았다. 삶의 원칙으로 삼은 것도, 애써 기억해둔 것도 아니다.

 

잠들기 전 내가 고르지 않은 오래된 장면이 먼저 나타나는 것처럼, 어느 밤에는 이 말도 그렇게 와 있을지 모른다.

 

미워할 필요 없다.

 

반응형

'울산의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갈 수 있을 만큼만  (0) 2026.08.18
그런 아침  (1) 2026.08.17
판본  (0) 2026.08.08
여름을 함께 보내는 법  (0) 2026.08.04
했음, 안 했음  (0)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