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몹쓸 음악이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간다. 하루가 끝나고 내일이 시작되기 직전, 겨우 일에서 풀려나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피커에서 노래 하나가 흘러나온다. 들었는지 봤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흥얼거리던 멜로디인데, 언제 어디서 주웠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입은 알고 있다.
마음이 먼저 안다.
솔직히 이런 음악이 가끔은 얄밉다.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고, 그 감성에 홀딱 빠지는 것도 좋아하는 주제에, 이걸로 먹고사는 것들이 야속하달까. 그동안 나는 꽤 많이 달라졌는데 노래는 그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환경도 바뀌고, 상황도 바뀌고, 마음먹은 것까지 다 바뀌었는데, 몇 소절이면 나를 그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그때의 나로, 그때의 표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면서도, 그래서 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립다기엔 너무 쉽고, 미련이라기엔 어딘가 어긋나고. 좋았던 기억만 남은 것도 아니라서, 이 감각에 이름을 붙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런데 노래가 흐르는 몇 분 동안만큼은 그런 판단들이 전부 힘을 잃는다. 지나간 시절의 감각이 잠시 현재형이 되는 것이다.
이상한 건, 그게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는 거다. 얄밉다면서도 그 몇 분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나라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럴 때 그 말이 좀 이해된다. 이만큼 멀리 왔는데도 노래 하나에 그때가 되살아나는 걸 보면, 뭔가 이상하고도 짜릿하지 않은가.
사람마다 남겨두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 노래를 찾아 듣고, 누군가는 그 노래만 피하는 식으로. 어느 쪽이 더 깊은 마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그 곡은 저마다의 안에서 이미 조금씩 다르게 불리고 있을 것이다.
후회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오래 그렇게 말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밤길에서 자꾸 멈칫하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돌아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결국 원곡을 찾아 듣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흥얼거리던 것과 어딘가 다르다. 어느 소절은 내가 더 늘려 부르고 있었고, 어느 소절은 아예 지워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부른 쪽은 원곡이 아니라, 내 안에서 조금씩 바뀐 판본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그 시절도 그렇게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내가 오래 흥얼거리며 조금씩 고쳐 부른 판본으로.
그도 그럴 것이다. 같은 시간을 지나왔어도, 그가 부르는 판본은 내 것과 다를 테니. 어느 소절을 늘려 부르는지, 어느 부분을 지웠는지, 나는 영영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각자의 판본을 흥얼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원곡은, 어디에도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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