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는 가깝다. 너무 가까워서 여행을 준비한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 울산에서 차로 북쪽을 향하면 그만이다. 벚꽃이 피면 가고, 보문에서 밥을 먹고, 황리단길을 걷는다. 마음만 먹으면 불국사와 석굴암도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다.
그렇게 가까이 두고 살아도, 경주를 '천 년 가까이 한 나라의 수도였던 도시'로 여기며 간 적은 많지 않다.
경주는 경상북도다. 울산은 광역시이고 경주는 경북이다. 붙어 있어도 뉴스가 다르고 행정이 다르고 정치가 다르다. 멀지 않지만 우리 지역은 아니다. 내게 경주는 오랫동안 그런 곳이었다. 가까운 타지.
그런데 신라 시대로 들어가면 지금의 경계는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당시 중심은 경주였다. 왕이 있었고 궁궐이 있었고 큰 절이 들어섰다. 지금의 울산은 그 왕경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였다. 울산박물관이 반구동 유적을 '신라의 해문'으로 조명한 것도 그래서다. 경주에서 언양과 울산, 양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통로였다.
지금은 울산이 산업도시이고 경주는 그 옆의 역사도시처럼 보인다. 천삼백 년 전에는 그 순서가 거꾸로였던 셈이다.
같은 자리에 있는 두 도시를, 세월이 이렇게 바꿔놓았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도착할 때까지 그런 생각을 품고 간 것은 아니었다. 주차에만 20분이 걸릴 만큼 사람이 많았다. 겨우 차를 세우고 입구로 걸어가며 입장료를 확인했다. 무료였다.
입구에는 금관을 쓴 아이들이 돌아다녔다.
기념품인지 체험용인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금관을 하나씩 쓰고 있었다. 천오백 년 전이라면 아무나 쓸 수 없었을 것을,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뛰어다녔다.
들어가는 길에 종각 앞을 지났다. 성덕대왕신종, 흔히 에밀레종이라 부르는 그 종이었다. 다가서자 스피커에서 녹음된 타종음이 흘러나왔다. 낮고 긴 울림이 몇 초 이어지다 잦아들었다. 진짜 소리는 다르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다.
전시장 안에는 진짜 금이 있었다. 금관과 관장식, 귀걸이, 허리띠, 말갖춤까지 이어졌다. 신라 유물은 분명 화려했다. 계속 보다 보니 화려함과는 다른 결이 느껴졌다. 힘이 셌다. 금이면 금, 크기면 크기, 장식이면 장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떤 것은 투박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백제가 궁금해졌다.
흔히 섬세하다고 하는 백제는 실제로 보면 얼마나 다를까. 신라를 보고 있는데 백제금동대향로가 떠올랐다. 사진으로 아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다를 테니 언젠가는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금제품 가운데 오래 본 것은 금보다 초록빛이었다.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말갖춤이었다. 금속 사이에서 초록과 푸른빛이 일렁였다. 금을 쓰는 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귀하고 비싸고 권력을 드러내기에 좋았을 것이다. 다만 벌레 날개의 색을 보고 그것을 장식에 써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 순간에는 유물의 연대보다 사람이 궁금했다.
나는 근현대사를 좋아한다. 그쪽은 사람을 따라가기가 비교적 쉽다. 이름이 있고 사진이 있고 신문과 기록이 있다. 누가 권력을 잡았고 누가 밀려났는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모양이 잡힌다.
고대로 가면 어렵다.
특히 토기가 나오면 나는 연대부터 본다.
5세기. 아, 이때. 6세기. 그렇군. 그러고 지나간다.
굽이 어떻고 목이 어떻고 하는 차이가 중요하다지만, 아직 내 눈에는 대체로 토기일 뿐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어도 아는 시대와 모르는 시대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그런데 흙으로 만든 작은 얼굴 하나에서는 발이 멈췄다.
가늘게 뜬 눈, 큼직한 코, 웃는 건지 아닌지 모를 입. 정교하다기보다 조금 거칠고 익살스러웠다.
금관에서는 신라를 봤는데 그 얼굴에서는 신라 사람이 보였다.
왕 몇 사람의 이름은 남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조차 없다. 그런데 누군지 모를 얼굴 하나가 흙에 남아 천오백 년을 건너왔다.
황룡사 특별전에서는 반대로 사라진 것을 봤다.
9층 목탑은 없다. 그토록 큰 것을 세웠지만 지금은 터와 기록, 발굴된 물건으로 짐작할 뿐이다. 금관은 눈앞에 있으니 보면 되는데 없어진 목탑은 머릿속에서 다시 세워야 했다.
경주의 어느 자리에 거대한 나무탑이 서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아래를 오갔고 멀리서 경주로 들어오는 사람도 그 탑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 경주에는 이런 것이 많다. 무덤은 남았는데 사람은 없고, 절터는 있는데 절은 없다. 땅을 파면 사라진 도시의 조각이 다시 나온다.
그래서 경주는 옛것이 남아 있는 도시라기보다, 오래전 도시가 아직 끝나지 않은 곳처럼 느껴졌다.
종각 앞에서 들은 것은 녹음이었다. 진짜 소리는 아니었다.
성덕대왕신종은 파손 우려로 1992년을 끝으로 정기 타종을 중단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다시 울렸지만, 종의 보존 상태와 음향·진동의 변화를 확인하는 타음조사의 성격이었다.
오는 9월 15일, 그 종이 다시 울린다.
녹음이 아닌 소리는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그 소리가 궁금하다.
월지관에 들어갔을 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시를 보다가 작은 창 하나 앞에 섰다. 창 너머로 석탑이 보였다. 실내는 어둡고 밖은 젖어 있었다. 비가 세질 때 한 장, 조금 잦아들었을 때 또 한 장 사진을 찍었다.
나올 때는 비가 훨씬 거세졌다. 울산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저지대가 걱정될 정도였다. 도로 위로 물이 흘렀고 와이퍼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울산이라는 표지판이 다시 보였다.
천삼백 년 전이라면 왕경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때 경주는 중심이었고, 울산은 그 바깥으로 열린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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