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든다고 용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신 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정교해진다.
예전에는 무엇이 될지 몰라서 해보는 일이 많았다. 낯선 곳에 가고,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고, 별것 아닌 제안을 붙들고 며칠씩 들떠 있기도 했다. 결과보다 그다음이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라는 말이 생활 안으로 자주 들어왔다.
굳이 만나야 할까. 굳이 여기까지 해야 할까. 굳이 이 말을 꺼내야 할까. 대단한 상처를 입어서라기보다, 시작한 뒤에 따라오는 것들을 조금씩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은 여전히 틀리고 사람의 일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한 번 데었던 곳에 손을 가져갈 때 예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것은 손에 들지 않은 채 오래 둔다.
그것이 겁인지 분별인지, 이름 붙이지 않은 채로 둔다. 살다 보면 하지 않는 쪽이 나은 일도 분명히 있다. 가진 것을 지키는 데도 힘이 들고, 어렵게 만들어놓은 하루의 질서는 생각보다 값이 나간다.
먹고사는 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다른 것들을 지키며 산다. 혼자 있는 저녁이 불편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긴다. 약속 없는 날이면 냉장고를 열어 있는 것으로 대충 먹고, 앉던 자리에 앉아 하루를 끝낸다. 그런 것들도 오래 반복되면 하나의 생활이 된다.
어느 나이 이후의 연애는 조금 묘하다.
마음 하나만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각자의 방에는 가구가 놓여 있다. 의자 하나를 더 들이려면 무언가를 조금 옮겨야 한다. 혼자라면 아무 생각 없이 정했을 저녁 메뉴를 한 번 미뤄보는 정도의 사소한 일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에는 자기 시간의 모양까지 달라진다.
젊을 때의 연애는 방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옮겨놓은 의자 하나에도 한동안 자리가 낯설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 뒤에도 생활은 한동안 제자리에 남는다.
많은 것은 그냥 지나간다.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한때라면 궁금해서라도 열어보았을 문 앞에서 돌아서는 일이 생긴다. 돌아선 뒤 크게 후회하지 않는 날이 많아질수록 그 방식은 조금씩 몸에 밴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편이 더 안전하다.
문제는 가끔, 안전한 쪽을 골랐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가 줄어든 것 같은 날이 있다. 손해는 피했는데 이상하게 남는 것이 있다.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오래 마음에 걸리는 일.
그런 순간에는 결정의 자리에 현재의 나만 앉아 있지 않는다.
오래전에 했던 말이 먼저 와 있다. 누군가에게 건넸던 약속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를 믿었던 사람의 시간이 말없이 옆에 놓인다. 예전의 나는 이런 순간에 어떻게 했던가 생각하다 보면, 지금보다 훨씬 서툴고 단순했던 내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그때의 나는 자주 틀렸다. 너무 쉽게 믿었고, 필요 이상으로 버텼으며, 별것 아닌 일에 마음을 다 쓰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은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먼저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손익을 몰라서가 아니다.
무엇을 잃으면 자기 얼굴을 제대로 보기 어려워지는지, 그 문제만큼은 단순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 눈앞에 있던 것이 비로소 잔처럼 보인다.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지만 들지 않았던 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고, 마셔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마시지 않는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은 그대로 두는 편이 낫다고 말할 것이다.
나 역시 대부분의 잔을 그냥 둔다.
위험을 감수한다고 더 용감한 것도 아니다. 세상에는 건드리지 않아서 지켜지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반대편에 다른 것이 올라온다.
이문을 남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가진 것을 지키느냐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 잔을 끝내 들지 않았을 때 앞으로도 내가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조금 불편한 질문이 끼어든다.
그 질문은 계산을 망친다.
그동안 지켜온 약속이나 누군가에게 건넨 신뢰가 훗날 어떤 값으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사실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자기 몫을 했다고 해서 세상이 그 수고를 기억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선택은 끝까지 손해로 남는다.
그 사실을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잔을 드는 일을 용기라고 부르는 것도 조금 망설여진다. 용기라는 말은 실제 마음보다 너무 깨끗하다. 사람은 그렇게 한 가지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책임감 속에도 자존심이 섞이고, 신의라고 믿었던 것 안에 미련이 들어 있을 수 있다.
어떤 날은 그 모든 것을 구별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그저 더 이상 내려놓는 쪽으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든다.
마셔보면 답이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독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다음 날에도 알 수 없고, 몇 달이 지나도 모를 때가 있다. 예상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기도 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값을 치르기도 한다. 결정은 한순간인데 그것이 만들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조금 다른 문제가 남는다.
왜 마셨는지를 계속 설명하는 일보다, 마신 뒤의 시간을 살아내는 일.
선택한 순간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유보다 결과가 먼저 남았다. 미안해야 할 일이 생기면 미안해했고, 잃은 것을 없는 셈 치고 살지는 못했다. 생각이 달라졌을 때는 그 또한 내 선택이 데려온 자리였다.
그런 일은 별로 장엄하지 않다.
다음 날에도 밥을 먹고 약속한 장소에 간다. 가끔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기도 한다. 큰 결정을 했다고 세상이 장면을 바꾸어주지는 않는다.
아마 한 사람의 필모그래피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인생을 바꿀 것 같았던 사건은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고,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어느 날의 행동 하나가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무엇을 얻었는지보다 왜 그때 돌아서지 않았는지가 기억나는 순간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장면들이 조금씩 쌓였다.
어떤 것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것은 아직 결말을 모르겠다. 잘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도 있고, 그렇다고 후회라는 한 단어 안에 밀어 넣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있는 일도 있다.
그러다 보면 지나간 선택에 쉽게 이름을 붙이지 않게 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래된 일도 가끔 다른 얼굴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 역시 예전의 선택 앞에서 가끔 말을 바꾼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결국 좋은 뜻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끝내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떤 날의 나는 잔을 들었다.
그 순간의 내가 특별히 용감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피했고, 오래 계산했다. 그러다 어느 날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선택의 뒤쪽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그러니 그 잔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아직 이르다.
독배였다고 하기에도,
성배였다고 하기에도,
마신 뒤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