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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하루

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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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전자저울에 빈 그릇을 올리면 숫자가 뜬다.

 

840그램.

 

영점 버튼을 누르자 0이 되었다. 그릇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저울이 그릇을 없는 것으로 쳐달라는 내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참 편리한 버튼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의 심장을 저울에 달았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에서 심판보다 저울에 마음이 갔다. 살아서도 한 번쯤 빌려 쓸 수 있다면.

 

삶 전체를 달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미 결정했고, 행동했고, 결과까지 나온 일들이 있다. 바꿀 수 없는데도 신호를 기다리며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나 불을 끄고 누운 뒤에 불쑥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일들이다. 억울함이 없었다고는 못 하겠다. 틀리지 않았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적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 편만 드는 저울이라면 올라갈 이유가 없다.

 

결정할 때의 나는 한 사람이었다. 오래 생각했고, 정하고 나면 움직였다. 결과를 다 책임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에도 손을 댔다. 그런데 일이 끝나면 사람이 늘어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내가 있고, 달리 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내가 있다. 그 둘의 말을 듣다가 입을 다무는 나도 있다. 누구도 새로운 사실을 가져오지 않는다. 판단도 하나였고 행동도 하나였다. 다만 그것을 받아 든 내 안의 사람들이 합의하지 못한다.

 

그런 밤에는 설명문을 쓴다. ‘그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될 줄 몰랐다.

 

이미 지나간 일을 적으면서도 첫 문장은 현재형이다. 여러 번 고쳐보아도 그 부분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최선이었다는 것을 나는 무엇으로 확인했을까. 몰랐던 것과 알려 하지 않았던 것을 얼마나 정확히 갈랐을까.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한 일에 다른 동사를 붙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저울이 필요해진다. 누구의 설명도 듣지 않는 저울이라면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달아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접시 앞에 서면 무엇부터 올려야 할지 모르겠다. 행동만 올릴까. 그렇게 행동하게 된 사정도 함께 올릴까.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과 나중에야 알게 된 결과는 어디에 놓아야 할까. 어느 것은 판단에 꼭 필요한 사정이고, 어느 것은 내가 오래 간직해 온 변명일 수도 있다.

 

소포를 보낼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물건을 상자에 넣고, 빈틈에 종이를 채운다. 깨질 만한 곳은 한 번 더 감싸고 테이프를 두른다. 우체국에 가져가면 상자는 그대로 저울에 오른다. 물건을 지키려고 넣은 종이도, 몇 번씩 덧붙인 테이프도 함께 올라간다.

 

내 앞으로 온 상자는 처음부터 칼로 뜯는다. 상자가 구겨지지 않도록 테이프가 붙은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칼날을 넣는다. 한 겹을 가르면 그 아래 또 한 겹이 붙어 있을 때도 있다. 칼끝으로 남은 테이프를 걷어내고 접힌 부분을 펼친다. 가능하면 상자를 깨끗하게 열고 싶다.

 

소포를 보낼 때는 테이프가 모자랄까 한 번 더 붙이고, 받을 때는 그 테이프를 말끔하게 걷어내려 한다.

 

보내는 사람에게 보호였던 것이 받는 사람에게는 먼저 걷어내야 할 것이 된다.

 

우체국에서는 상자째 무게를 달지만, 집에서 포장을 벗기고 나면 내 손에 남는 것은 물건 하나다. 칼로 잘라낸 테이프와 구겨진 종이는 한쪽에 쌓여 있다. 처음부터 내용물만 꺼내 달았다면 다른 숫자가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체국의 저울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저울에 올리고 싶은 일도 그렇다. 그 일을 끝내려고 내가 보태놓은 것들이 모두 필요했는지는 선뜻 말하기 어렵다.

 

내가 충분히 고민했다는 것과 누군가 그 결과를 힘겹게 받아들였다는 것. 어느 하나를 인정한다고 다른 하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저울이 정확한 숫자를 보여주는 날에도 잠들지 못할지 모른다. 같은 숫자를 보면서도 내 안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할 테니까.

 

그런데 아침이 되면 또 결정할 일이 생긴다. 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미룬다고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 일도 있다. 나는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다. 어젯밤 지나간 일 하나를 달아보지 못해 잠을 놓쳤으면서, 오늘은 아직 무게를 알 수 없는 일에 다시 손을 댄다.

 

결정을 내릴 때의 나는 다시 한 사람이다. 언젠가 오늘의 일도 저울에 올리고 싶어질지 모른다. 저울은 지나간 것만 달 수 있다.

 

그동안 나는 공정한 저울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처했던 상황, 누군가의 부탁,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는 확신. 그 모든 것은 실제로 있었다. 어느 것은 그릇이고 어느 것은 내용물인지, 저울은 내게 묻지 않는다.

 

저울 위에는 아직 빈 그릇이 있다.

 

나는 0을 바라보다 그릇을 들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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