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진 육체적 조건,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묻지마 폭행과 흉기 난동을 보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뭐가 더 나아서 지구를 뒤덮고 있지?
저렇게 묻지마 폭행으로 뭐를 말하고 싶은 거지?
말하는 방법으로 어떻게 저런 무차별적인 폭력을...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상상력으로 지혜 인간 호모 사피엔스를 규정하고 있다.
다른 동물보다 열악한 신체조건을 가졌지만 상상력으로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고.
‘나 어제 뒷산에서 소보다 큰 호랑이를 봤어.’를 들었을 때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위험을 피할 수 있고, 지식을 전달할 수 있고, 마침내 자연을 탐구하고 신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인 상상력.
구석기 내 발로 걸어서 내 뇌가 인식할 속도에 맞춰 세상을 보던 나에서, 사계절을 배워 알고 식물의 자람을 예상하여 정착한 신석기까지.
딱 거기. 농경시대까지가 인간이 받아들일 수준이 아니었을까?
기차와 전깃불의 발명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가보지 않은 곳도 충분히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면서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도 상상인지 아닌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교육, 책, 비행기, 그리고 인터넷까지
온라인 세상의 내가 따로 있을 정도이니 내 인식체계의 수준 정도로 세상을 파악하기는 벅차다.
그래서 혼란스러운 뇌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교란한다.
오프라인의 내가 단단하게 설 자리가 없을수록 어디의 내가 진짜인지 잊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 세상에서 머물수록, 내 손에 스마트폰이 있으니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잊고 점점 자아가 비대해진다.
점점 늘어난 선택의 영역, 너무 많이 주어진 정보
마치 내가 이 세상의 매우 중요한 조정자 같으나, 막상 현실의 나는 초라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내가 괴리되면서 나만 억울해진다.
아니, 현실의 나와 온라인의 나를 구별할 수 있는 인식이라면 다행이다.
코로나 19와 함께 온라인 세상 구축이 가속화되어, 상위 5%의 삶이 보편적인것처럼 구현되는 그 속에서 이제는 온라인 세상의 나까지 초라해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너무 과한 상상력을 가진 존재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제2의 사춘기를 맞이했다.
바뀐 세상으로 인해 다시 아이덴티티를 찾아 나를 나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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