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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비움

계절이 바뀌고 옷을 정리할 때면 버려도 버려도 버릴 옷이 꼭 나온다.

이건 2년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고, 이건 이제 목이 다 늘어지고 작아졌다.

 

한번 산 볼펜은 끝까지 쓴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적고 싫증나는 법이 없다.

 

물건을 사기 전에는 어디에 넣을지가 먼저 고민된다. 물건이 나와 있거나, 같은 물건이 쌓여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확인하고 처리한 이메일과 문자는 삭제해야 되고, 그건 컴퓨터 바탕 화면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물건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뭐든 넘치는 건 부담스럽다.

심지어 인간관계까지도.

 

이런 내가 참 까탈스럽다고 생각되었는데, 나를 지칭하는 말을 찾았다.

미니멀리스트.

다행이다.

 

심지어 이제는 단순한 삶이 칭찬받기도 하고, 미니멀라이프, 정리하는 법을 소개하는 책도 많다.

 

정리는 학습일까 타고난 것일까?

같이 자랐지만 라이프스타일이 다른 형제들을 보면, 다소 타고난 성향인 것 같다.

 

모델하우스 같은 나의 공간.

 

이런 나에게도 좀처럼 비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그 어딘가.

 

단순 조립 생산 기능의 낙후함이 되어버린 머리는 성장 없는 정체성을 보이고

포괄, 순차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뒤척임에 결국 해뜨긴 전 새벽 분위기에 감싸인다.

 

잘못된 전제로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져 엉뚱한 결론이 만들어지지만

그러나 여전히 나는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고 돌아오지 않는 위안을 구한다.

따라야 할 명확한 길을 갈망하지만 어지러운 방에서 작고 찾기 힘든 물건을 찾는 것 같다.

핸드폰 불빛과 뒤척임을 반복하는 새벽엔

이유 없는 일에 애써 이유를 찾고 있었다는 생각의 수치심과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 먹을 소주가 없음을, 잔뜩 사다 보낼 곳 없는 이모티콘을, 카페에서 티켓팅할 목적지가 없음의 욕심을 비우지 못하고 쥐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허우적거리다 서너 시간을 일찍 깨지만

동이 트기 시작하면 무거운 마음, . 물리적으로 깨어만 있는 몸이 된다.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