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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내담자로서의 나

몇 가지 약을 손에 들고 앉았다.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스쳐간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 두 달 전이다.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는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나이에 따른 상실감이고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적인 문제에다가 조금의 불안.

답을 알고 시작한 상담은 어쩌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로 바뀌었다.

내가 하는 말을 다시 되돌려 줄 뿐인데, 제삼자를 통해 객관화된 워딩을 듣게 되는 소름 끼치는 경험이란.

자격증의 권위와 함께 다가오는 무거운 말들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진행할수록 나의 편협한 생각이 드러났다.

부끄러웠다.

발설하지 않을 전문가임을 알면서도 숨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무서워졌다.

 

나는 전문가와의 상담 태도에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나 스스로 중립적이라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긍정적인 태도는 종종 더 유리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학부시절 곁다리로 공부해서 몇 가지 자격증 시험을 쳤었다.

심리상담사, 심리분석사, 분노조절지도사.

단순 외우기만 했던 이론이 내담자가 되어보니 또 다르다.

물론 정규 과정을 거친 전문의와는 차원이 다르겠지만,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보다.

 

.

참 많은 경험을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단 한순간도 책임을 버린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보니 나의 가치가 어디에 갔는지 찾기 힘들고, 참으로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허무함을 약으로든 따뜻한 말로든 메꾸고 싶어 찾아갔는데,, 또다시 회피하는 나를 직면하니 참 한심하다.

그러다가 의사가 해준 운이 없으셨네요.” 한마디에 슬며시 고개가 들어진다.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나도 상대방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라 깨닫는다.

선별과 차별 없이 의도를 버리려 한다.

오늘은 선생님이 해 준 충고대로,

햇빛을 쬐고,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스트레칭을 해 보련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받기를 원한다.

나를 찾는 과정이자 치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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