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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조금이라도 일굴 만한 흙이 있다면 발코니 재배상자에서라도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나같이 벌레가 싫어 일상에 적극적으로 자연을 들이지 않는 사람도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파도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불면에 시달리면 자연을 향한 본능적 애정으로 두리번거리다 창 밖을 한참 바라본다.
 
영화 ‘인테스텔라’에서 블랙홀로 빠져 시공간에 갇힌 주인공의 딸 책장 뒤처럼 상상속에서만 그리던, 존재하지만 갈 수 없는 곳에 나는 와 있다.
그런 설레임 속에서 도심 속 강의 상류를 바라보았다. 아침마다 친숙하게 마주할 수 있는 햇빛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겠지만 나에겐 예술가가 그려놓은 새로운 세상 속 풍경이었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행복한 것이지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거꾸로 흐리지 않는 저 강처럼 우리 곁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는 듯한 새로운 여행, 그 여행에 동참할, 나를 품어줄 티켓을 주는 듯한 저 강을 바라본다.
 
저 강은 자기를 내어 낚시 포인트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놀이 아지트를 제공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제공한다.
흐르는 강이 흐르는 시간을 품고 매일을 품고 이방인인 나를 품는다.
 
나를 품어준 사랑은 저 강처럼 변하지 않았다. 받아주고, 내어주고, 품어주고.
그리고 기다려 주었다.
 
도심 속 강을 바라보는 나는 숨이 쉬어지고 무언가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음을 느꼈다.
우리에게 자연의 자리를 더 내주어야겠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저 강도 노을과 함께,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과 함께 동일한 시공간에서 행복하게 서로를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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