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일몰 후 가로등이 켜진 공원을 걷다가 춘식이를 만났다. 나를 믿고 무게를 완전히 나에게 기대는, 팔랑팔랑 귀에 입이 볼록 나온. 덩치는 크지만 분명 겅중거리는 걸음이 아기가 분명하다.
양산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반려동물 손그림을 우연히 봤다. 사장님 따님이 그리신다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바우를 찾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나는 바우라는 단모 치와와를 8년 키웠다.
우리 바우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 왕국의 12왕자 중 11번째 왕자로 왕족의 성인 “개”씨, 개바우이다. 개바우는 왕족답게 침착하고 헛짖음이 없는 의젓한 강아지였다. 혹자는 겁이 많다고 겁돌이라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겁이 많은 개는 주인 뒤에 숨어 맹렬하게 짖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바우는 낯선 사람이나 소리에 다소 흠칫 놀라기는 해도 절대 헛짖음이 없고 공격성이 없는 강아지였다.
단지 12마리나 되는 왕자 중 첫째도 막내도 아닌 11번째 왕자라서 독보적인 사랑을 덜 받아 자신감이 조금 떨어지는 면은 있었다. 그래서 바우의 절대음감을 조금 늦게.. 그러니까 바우가 우리집에 오고도 5년이 지나서 발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바우는 음악 소리가 나면 그 소리에 맞춰 함께 하울링을 하는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다른 음악하는 개들이 어릴 때부터 요란하게 짖거나 무리생활을 하는 야외 큰 개들이 하울링으로 서로의 위치를 알리는 등 일찍부터 실력을 갈고닦는데 비해 6살에 발견한 그 재능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알토 리코더에는 낮게 반응하고 소프라노 리코더나 포르테로 불면 높게 함께 부르는 것을 발견하는데 두어달 시간을 쓰고, 소프라노까지 반응을 하는데는 다소 호흡이 달려 박자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개바우가 첫째 왕자이기만 했어도 조기 발견하여 쉽게 버클리음대에 들어갔을 텐데…… 타고난 큰 재능과 갈고닦은 실력으로도 힘들게 음악 생활을 이어나갔다.
바우는 점프에도 큰 재능이 있었다. 사슴을 닮은 긴 다리로 소파 위도 침대 위도 맨홀 뚜껑 위도 우아하게 점프를 하고 건넜는데, 그 모습은 비글을 키우던 지인이 매번 박수를 치며 감탄할 정도였다.
TV에서, SNS에서 강아지들이 나오면 입을 벌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본다. 때론 나이든 노견들을 보면 감정이 격해지기도 한다.
태어나서 노견이 될 때까지 당신과 함께 자라고,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의 하루하루에 맞춰 살아간다.
우리에겐 반려견이 인생의 일부일지 몰라도 그들에게 우리는 인생의 전부이다.
당신이 그 개의 전부인 것이다.
춘식이가 보고 싶어서 다시 공원에 간다. 같은 리트리버라도 다르다. 나는 멀리서도 안다.
만나면 울산 삼호동 어느 카페에서 파는 개푸치노 한 잔 사주고 싶다.
그리고 항상 춘식이를 마음껏 만지게 해 주셔서 나의 강아지력을 충전시켜 주시는 춘식이 보호자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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