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가 아니라, 확실히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이다.
내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소탈하고 모범적인 앤에게 그 이데아가 있다면, 지금 2-30대는 해리포터, 찰리의 초콜릿 공장, 포켓몬이 근원이지 않을까?
소설 마틸다에서는..
부모에게 무관심을 넘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마틸다는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억압을 하는 교장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지적호기심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 몸으로 실천하는 정의감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는 초능력과 천재성이라는 특이성에 가려져 기존의 틀을 깨려면 마치 특별하고 영웅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지금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는 마틸다이다.
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의 환경을 깬다는 것은 초능력이 생기고, 갑자기 뛰어나오는 친부모와도 같은 믿을 수 없는 힘이 생겨야 가능해 보이는 간절한 바램이겠지.
그래서 소설에서는 앤에서와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했다. 특히 기존 질서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억압을 이겨내야 한다는 면에서. (그렇지 않은가? 착하게 살면 복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니..)
뮤지컬 마틸다는 그런 면에서 어른인 나에게도 부당한 대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용기 있는 대응을 할 수 있게끔 설득하는 가슴 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쩌면 음악의 힘일까? 혹은 화면을 압도하는 군무와 색채의 힘일까?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는 첫 시작부터 존재론적 특별함을 아기와 부모의 노래로 개체의 소중함과 개인의 특별함을 강하게 인식시켜준다. 그래서 환영받지 못하는 마틸다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극이니까. ㅎㅎ)
이 인식은 나를 전체 중 하나로 생각하고 내가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색채와 노래와 ‘아, 개체는 개개의 특별함이 있어.’를 당연하게 수긍시켜 줬다.
서술이 아니라 군무와 음악적 대사로서 전달을 하니 행간에서 작용하던 내 경험과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뛰어 넘어 마틸다의 상황, 그리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비유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아이들은 귀찮고 구더기같은 존재라 훈육하고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버리겠다는 교장선생님으로 대변되는 기존 질서는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혹은 자신도 어린이였다는 것을 잊지 않은 것으로 상징되는 담임선생님,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함께 깨어지고 당연히 정해진 미래가 아닌 만들어가는 미래로 변해간다.
마틸다는 당연하게도 행복을 쟁취한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자신처럼 약한 도룡용 그리고 도룡용을 주전자에 넣을 수 있는 친구, 함께 글을 읽고 대응 할 수 있는 어른들 입장에서는 다소 삐딱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글과 다른 맛이 있는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행간에서 오는 상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꽉 짜여진 연출의 맛도 즐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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