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5) 썸네일형 리스트형 이름 없는 잔 나이가 든다고 용기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신 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정교해진다. 예전에는 무엇이 될지 몰라서 해보는 일이 많았다. 낯선 곳에 가고,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고, 별것 아닌 제안을 붙들고 며칠씩 들떠 있기도 했다. 결과보다 그다음이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라는 말이 생활 안으로 자주 들어왔다. 굳이 만나야 할까. 굳이 여기까지 해야 할까. 굳이 이 말을 꺼내야 할까. 대단한 상처를 입어서라기보다, 시작한 뒤에 따라오는 것들을 조금씩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은 여전히 틀리고 사람의 일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한 번 데었던 곳에 손을 가져갈 때 예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떤 것은 손에 들지 않은 채 오래 둔다. 그것이 겁인지 분.. 작은 저항 그 노래를 들으려고 가볍게 입고 나갔다. 앞으로 가는 몸에 공기가 부딪혔다. 걷는 만큼 바람이 밀려왔다. 내가 앞으로 가고 있어서 생기는 작은 저항. 그 안에서 공기의 질감이 느껴졌다. 막 시작됐는데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 같은 공기였다. 고개를 내려 걷는 나를 한번 봤다. 발이 나가고,다리가 움직이고,윗옷의 여분은 바람에 뒤로 밀렸다. 괜히 배에도 한번 힘을 줘봤다. 내 귀에는 발소리가 쿵쿵 들렸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제법 사뿐사뿐, 날렵하게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인과 가족, 반려견과 나온 사람들이 어둑한 길을 지나갔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쳐가고,나는 그냥 앞으로 가면 됐다. 귀에는 한 곡을 반복해 틀어두었다.사람은 눈물을 보이지 않고는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같은 노.. 판본 참 몹쓸 음악이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간다. 하루가 끝나고 내일이 시작되기 직전, 겨우 일에서 풀려나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스피커에서 노래 하나가 흘러나온다. 들었는지 봤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흥얼거리던 멜로디인데, 언제 어디서 주웠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런데 입은 알고 있다. 마음이 먼저 안다. 솔직히 이런 음악이 가끔은 얄밉다.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고, 그 감성에 홀딱 빠지는 것도 좋아하는 주제에, 이걸로 먹고사는 것들이 야속하달까. 그동안 나는 꽤 많이 달라졌는데 노래는 그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환경도 바뀌고, 상황도 바뀌고, 마음먹은 것까지 다 바뀌었는데, 몇 소절이면 나를 그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그때의 나로, 그때의 표정으로. 돌아가고 싶은 건 .. 말이 증거가 되는 관계 언어의 민감함은 장마 전의 날씨를 닮았다. 아직 아무것도 내리지 않았는데 몸이 먼저 안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셔츠가 등에 붙고, 사람들은 저마다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본다. 어떤 관계에서 나는 그 날씨를 먼저 감지하는 사람이었다. 농담 하나, 늦은 답장 하나, 말끝에 붙은 조사 하나에서 습기를 읽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불쾌한, 그런 계절이 관계 안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처음의 길은 곧았다. 넓지 않아도 충분했고 빠르지 않아도 닿았다. 그 길이 어느 해부터 포장을 잃었다. 자갈이 생기고, 굽이가 생기고, 나중에는 산길이 되었다. 길이 험해진 것인지 내 걸음이 조심스러워진 것인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그때부터 나는 말을 오래 만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건너도 되는가. 이 침묵은.. 말을 걸어오는 노래 음악 없는 삶이 가능할까? 우리는 카페, 식당 등 수많은 음악 속에 살아간다. 음악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두 달이 넘는 동안 일부러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이석증으로 귀 주변이 빙빙거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어떤 작은 소리도 불편해서 애써 소리를 피했다. 음악을 듣지 않으니 욕심껏 구매한 종류별 이어폰도 자연방전 상태다. 일과 관련하여 연락처를 주고받은 분이 카톡 친구로 떴다. 카카오스토리에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뜨고, 그 분이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도 있다. 살짝 들여다 봤다. 어느 정도 나이가 짐작되는 노래 제목들이 보인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운전을 시작했다.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차를 멈추고 한참을 들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노래가 있다. 전..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