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계를 최소화하려는 나는
정신적인 지침이 게으름과 더해져 늘어짐을 주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고민하고
누군가와는 균형을
누군가와는 선호를
크고 보이지 않는 관계망 속 사회 언저리 어딘가 겨우 참여하고 있다.
판단이나 비판을 받는 것이 불편하고 타인을 신뢰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많은 검증의 시간이 걸려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아직도 서툴러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선 피해자에게도 예외가 없어
형태로 가치를 판단하고 가면과 약간의 위선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상대에게 보여줄 모습을 습관된 학습으로 보여주고, 학습과 고민에 따라 최적화된 보유의 색을 꺼내든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으로 자기 객관화를 하고, 상대가 보고 듣고 싶은 데로의 이 섬세한 상호작용.
균형과 취약성의 진정성이 무너지면 층 아래 깊이 숨겨져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와 무게를 넘어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기 객관화는 대가를 치른다.
외부 압력과 사회적 영향. 때론 시간의 흐름으로 비롯되더라도 거울 속 자기 객관화는 필요하다. 내가 이렇게 해 왔구나, 내 행태가 이렇구나. 머릿속 이미지와는 다른 자기 객관화.
심플함을 좋아하고, 안 주고 안 받고 싶으며
설명하고, 목적에 부합하고, 조건을 걸지 않는다.
나는 그런가?
이미지 투사, 자기검열, 지적이 아닌 수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