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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공기처럼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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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tlqboJp0bFY

 

공항에 앉아 있으면 온갖 언어가 들린다. 그런 곳에서 오히려 나에게 더 집중하게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주변이 낯설어질수록 나는 조금 희미해지고, 그때 내 쪽이 선명해진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다.

 

급하게 떠났다. 국제운전면허증도 만들지 못했다. 차 대신 자전거를 생각했고 네 시간을 빌렸다. 여덟 시간도 잠깐 망설였다. 혼자 그 긴 시간을 어디에 쓸지 아니, 자신이 없었다는 말도 정확하진 않다. 그냥 가늠이 안 됐다.

 

타는 동안엔 핸드폰을 쓰지 말라고 했다. 다른 장비도 없었다. 그래서 사진도 영상도 남기지 못했다.

 

넉넉한 자전거도로를 달렸다. 차가 거의 없는 길을 지나 논 사이로 들어갔을 때는 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들을 사람도 없는데 입이 먼저 움직였다. 체인 돌아가는 소리, 가끔 스치는 풀냄새, 저 멀리 경운기 소리 사이로 페달을 밟았다. 어디에 쓰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나왔다.

 

길에 높낮이가 생길 때마다 하늘도 달라졌다. 조금 올라서면 하늘이 크게 열렸고, 내려가면 다시 멀어졌다. 같은 하늘인데, 내가 있는 높이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을 안 가져온 걸 두 시간쯤 지나서야 알아챘다. 편의점이 보였는데 그냥 지나쳤다. 목이 마른데도 계속 달렸다. 쉬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쉬는 일이 그냥 순위에서 밀렸다. 구글맵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으로 너무 갔다 싶으면 방향을 돌렸다. 어디쯤 있는지보다 계속 달리는 쪽이 좋았다.

 

한 시간이 넘어가자 두리번거리는 것도 그만두게 됐다. 원래 이곳에 사는 사람처럼 길을 건너고, 차가 오면 비켜섰다. 무엇이 유명한지 묻지 않았고, 여기 있다는 표시도 내지 않았다.

 

그냥 공기처럼 있다 가고 싶었다.

 

내가 덜 보일수록 이상하게 도시가 더 잘 보였다.

 

넓은 길과 좁은 길의 차이가 몸으로 들어왔고, 논 사이의 느슨함과 자동차 옆을 지날 때의 긴장이 달랐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이 도시를 그렸다. 지도에는 없는 선이다. 어디를 지나왔는지 다시 말하라면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길에서 속도를 냈는지, 어디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어느 순간 하늘이 갑자기 커졌는지는 남아 있다.

 

이번 여행도 대체로 그랬다. 하루에 계획은 하나쯤 있었고 나머지는 비어 있었다. 밤이 늦어도 그냥 뒀고, 졸리면 그대로 누웠다. 몸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고, 마음이 몸을 따라가기도 했다. 둘 사이는 썩 괜찮았다.

 

혼자 있으니 쓸데없는 짓을 많이 했다. 굳이 돌아가고, 조금 더 걷고, 별것 없는 곳에서 시간을 쓰고, 이유 없는 방향으로 갔다.

 

쓸데없다고 부르면 편했다. 그런데 정말 쓸데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네 시간이 자꾸 먼저 떠올랐다. 남길 영상 하나 없는 시간, 애초에 남길 수도 없었던 시간인데도.

 

어쩌면 쓸데없다는 말에는 늘 그다음이 붙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에 쓸 것인지, 무엇이 남는지.

 

그날 네 시간은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다 써버렸다.

 

그러고 보면 버린 시간과 아무 데도 건네주지 않은 시간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반납시간에 맞춰 돌아왔다. 자전거를 세우고 나서야 목이 심하게 마르다는 걸, 볕에 조금 탔다는 걸 알았다. 달리는 동안에는 바람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잠깐 있다가 다시 움직였다. 처음부터 그런 식이었다.

 

내가 조금 희미해질수록 더 많은 것이 들어왔다.

 

자전거는 돌려줬고, 네 시간의 길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볕만 조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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