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자, 나가.’
찌는 더위로 에어컨 아래 실내에만 있다가, 나의 구석기 뇌가 더 이상 견디질 못했다.
어디로?
미리 비행기 표도 숙소도 알아보지 않았다.
그럼, 내손내운.
내 손으로 내가 운전해서 간다.
강릉으로
필시 산이라 시원하리라. 안목항 커피는 향기로울 것이고, 푸른 바다는 해방감을 주겠지.
7번 국도를 타고 천천히 강릉을 향했다.
역시 동해다.
잠시 들른 망양 휴게소마저 시원하게 뻥 뚫려있다.
여기서 멈춰 하룻밤 쉬며 바다만 바라봐도 올 여름휴가는 완벽했다고 말할 듯.
긴 시간 운전으로 지친 무릎과 어깨를 살살 달래가며 안목항을 뺑뺑 돌아 주차를 했다. 강릉에 왔으니 당연히 커피콩빵과 함께 커피를 마셔줘야지.
대한민국에서는 맛없는 커피 찾기가 더 힘들겠지만 그래도 일부러 골라골라 카페 블렌딩의 핸드드립으로 주문했다.
오늘의 커피는 너다.
지금을 위해 껌과 사탕으로 장거리 운전을 버텼다.
안목해변을 바라보며 코를 벌름벌름 향과 함께 마신 커피는 역시 진하고 고소하다. 플라시보라도 좋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 1호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강릉 오는 길 휴게소에서 호텔 앱으로 급하게 잡은 숙소는 시내의 비즈니스호텔이었다. 강릉은 관광도시답게 비즈니스호텔에서도 와인오프너와 글라스를 빌려주고 대응도 무척 친절하다. 루프탑에서는 스낵과 맥주도 판매한다.
‘좋아 경포대를 산책하고 가볍게 맥주다!’
해가 기웃기웃한 경포대는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동안 내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이도 어머니 사임당과 여기를 거닐었겠지? 몇년 전 유쾌하게 관람했던 에디슨 박물관은 여전할까? 소장품이 늘어났을까? 오죽헌을 내일 낮에 가기엔 너무 덥겠지?’
강릉에서는 강릉스러운 생각만 한다.
몽글몽글 초당순두부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아르떼뮤지엄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름과 겨울 여행엔 실내인 미술관 만한 곳이 없다. 아르떼뮤지엄은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제주와 여수, 그리고 강릉에 자리 잡고 있다.
역시나 나처럼 더위를 피해서 온 사람들이 많다.
음악과 어우러져 내 위치에 따라 조명과 전시물이 바뀌고, 나의 반응에 따라 꽃이 피고 물방울이 터진다. 아이처럼 자꾸 손을 가져다 대고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전시물과 놀고, 부모님들은 그 장면을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찍어 그들만의 2차 작품이 만들어진다. 여기 이 장면이 백남준이 꿈꾸던 미디어아트가 아닐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천천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며 경포해수욕장으로 왔다.
소나무 그늘 아래서 한 세월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즐기니 비로소 아까 본 작품들이 해석되고 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실감 났다.
하늘과 경계가 흐릿한 바다를 보다 잠시 눈도 귀도 닫아 본다.
뇌가 잠시 쉬는 것.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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