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까랑 좀 틀리네요?”
아.. 또..
유독 다르다와 틀리다의 잘못된 사용이 귀에 거슬린다.
어릴 때부터 정확한 언어사용, 혹은 낱말의 어원, 표현이 귀에 잘 들렸다.
예를 들어 쉬운 말로 개선된 자동심장충격기의 경우도 원래 이름인 제세동기가 세동을 제거한다는 말 뜻 그대로이기 때문에 내 기억에는 더 잘 남았다.
요즘 귀에 맴도는 말은 어렵다/힘들다
공부는 확실히 힘들다. 진도는 공부를 할 수준을 맞추면 되니 어렵진 않지만 힘들다. 그러니까 힘들다가 바른 표현이 맞다.
또 생각하게 되는 표현은 “괜찮아요” 다.
스팸성 광고 전화를 받으면 “괜찮습니다”라고 거절을 하고 끊는데, 사실 ‘괜찮다’라는 말은 거절의 표현이 아닌데, 거절로 사용하니 참 어색하다.
나의 경우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감정의 차이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음에 밥 한번 해요!’
나는 정말로 다음에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우리가 밥을 같이 먹을 만큼 가까운 사이인지,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부담스러워한다. 말한 사람은 대부분 그냥 인사치레로 한 빈말인지 아는데도 순간 먹거나, 못 먹거나를 결정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거다.
중고등학생들이 우루루 나오는 시간대에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사방에서 욕이 들린다. 요즘은 아예 ‘굉장히’라는 표현을 대신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말의 시작과 끝에 마치 ‘아, 맞다!’를 붙이듯이 욕을 붙인다. 중간중간 강조표현에는 당연하고, 그런 것이 없더라도 마치 틱처럼 ‘욕 문장 욕’을 쓰니 옆에 가기 무서울 정도다. 화의 표현이나 감정의 배설이 아니라 정말 그냥 말의 시작과 끝에 욕설을 붙인다.
내가 어릴 때도 우리만이 쓰는 은어가 있고, 줄임말도 사용했는데 요즘은 마치 영국 계층언어처럼 세대별로 언어사용이 다른 것 같아 적응이 힘들다.
젊은 세대보고 독해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아마 나도 젊은 세대의 언어에는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진단이 나올 거다.
언어를 일차적으로 타인 과의 소통 수단으로 본다면 발화자의 언어에 맞추어 이해해야 될까, 청자의 언어에 맞춰 발언해야 할까?
나의 경우처럼 ‘다르다’를 ‘틀리다’라고 잘못 사용한 경우를 들을 때 당연히 (0.5초 머뭇거림이 있지만) 화자의 의도대로 알아듣는다. 편견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래도 조금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학생들도 아마 어른과의 대화나 사회에 나와서는 말의 시작과 끝에 욕설을 붙이지는 않을 거다.
그럼 스스로와의 소통에서 언어는 어떠한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모국어로 생각한다. 그러니 원초적인 감정의 영역이 아니고는 자신의 언어 수준만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정답은 모르나, 스스로와 소통하고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데 언어는 분명 수단이고, 또 혹은 장벽이다.
소통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언어가 가끔 거슬리는 말로, 혹은 문해력 수준으로, 혹은 가끔은 은어와 욕설로 머뭇거려질 때. 가끔은 심지어 오해의 소지가 될 때.
청자와 화자 중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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