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제기
이 논문은 ‘공공성(puclicness)개념이 지닌 해소되지 않는 모호함과 흐릿함에 대한 불만족에서 출발했다. 즉 공공성의 개념이 왜 모호하고 흐릿한지에 대해 다학제적이고 맥락적으로 분석하여 공공성의 판단의 주체로서 행정이 어떠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 논의하였다.
공공성의 개념은 왜 모호한가?
논문에서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진단하고, 현실로의 연결을 꾀했다.
첫째 원인은 다학제적 접근의 미흡함이다. 우리가 ‘공공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해당 용어에 대한 접근방식은 행정학, 정치학, 경제학 등 분과 학문별로 같지 않다. 서로 다른 개념 정의와 문제 진단이 엇갈리는 일종의 ‘0점 조정의 부재 상황’인 것이다.
둘째 개념과 현실문제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해명의 필요성이다. 정치적 슬로건으로서 공공성이라는 용어의 익숙도는 높아졌고, 축적된 연구물의 양적 외연 역시 확장되었으나, 이것이 유의미한 수렴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오히려 우리의 이해를 혼란하게 한 일면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개념과 현실 간의 간극을 주려 하는 실천적인 논의가 반드시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다학제적 이해’와 ‘현실과의 접점’에 대한 모색은 사회적 삶의 공적측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행정과 정책 등의 분야에 있어서 높은 의미를 갖는다. 행정과 정책이 어떠한 공공문제를 진단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공공문제인지’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텐데 저마다의 상이한 이해방식과 접근 논리로는 연구자 각자가 자신의 분과학문의 특수한 맥락에서 공공성 담론을 확장하여 자신의 사고틀 안에서 ‘공공성 파괴와 이로 인해 발생한 공공문제는 이러이러한 것이다’라고 좁게 단언하고, 이러한 좁은 단언들이 지나치게 일반화되는 문제가 발행할 수 있다.
따라서 1)공공성을 학제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2)공공성 개념이 현실문제와 어떠한 연결고리를 갖는지를 행정과 정책의 관점에서 사례중심으로 다루어 그 중심에 정치적 공방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을 논의하며, 3)공공성 개념이 국가체제의 집권과 분권을 둘러싼 쟁점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4) 공-사의 구분을 둘러싼 판단이 권력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아울러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동하는 맥락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힌다.
Ⅱ. 공공성 개념의 학제적 이해
공공성(publicness)이란 “국가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련된 공통의 질서, 기구, 공간, 자산, 활동, 가치 등 다양한 ‘공적인 것들’에게 ‘사적인 것들’에 대비하여 부여된 공적의무(책무) 일반”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공적인 것은 ‘공공성이 있다’라고 판별하며 공적인 의무를 지는 한편 사적인 것은 ‘공공성이 없다’라고 판별하고 사적인 자유를 부여받는다.
한편,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의점들이 있다.
첫째, 공공성 여부의 판별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부여되는 ‘공적의무’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고, 둘째, 어떤 것을 ‘공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어떠한 것을 ‘사적인 것’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셋째, 현실에서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선명하게 구획 짓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이며, 넷째, 공공성 개념은 다양한 ‘공적인 것들과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존재론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위 공공성의 정의와 유의점에 염두를 두고 각 사회과학 분과학문별 공공성에 대한 이해방식을 살펴보자면, 행정학은 ‘정부부분’과 ‘정부활동’의 범주 안에 있는 조직, 기구, 참여자, 활동 등의 존재(물)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공공성 판단’을 시야 내에 둔다. 행정학에서 공공성의 문제는 ‘공적인 기구로서 정부가 명확하게 지니고 있었던 독점적인 권한(공권력 등)과 역할 등 지위와 정체성에 변동이 야기됨으로써 정부 행위자와 비정부 행위자 간의 공공성 판별이 복잡해진 현실’에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세계 2차 대전과 전후복구 시절의 노동력 및 물자의 독점에 관한 독점적 공공성이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정부권한의 일부가 민간으로 넘어갔으며 또한 2008년 이후 강조된 민간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가치강조로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사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던 기업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공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던 정부가 사적인 효율성과 전문성을 추구하는 패러독스가 발생하게 되었다.
정치학은 시민의 ‘공적참여(public participation)’와 ‘자기통치(self-determination)’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공공영역(public sphere)’을 ‘공공성 판단’의 시야에 둔다. 정치학에서 공공성의 문제는 시민들이 지닌 공공성(공적의무)이 약화됨에 따라, 상호 간의 유대와 연대가 약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폴리니’와 ‘하버마스’등에 따르면 ‘공공성의 압제’로부터 자유를 확보해 나갔던 자유주의 투쟁의 과정에서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보는데 ‘폴리니’는 시민의 ‘사회적 유대(social solidarty)’가 부르주아 시장주의에 따라 ‘경제적 계약(economic contracts)’으로 대체되어 사회적인 것이 소멸되는 ‘거대한 전한(the great transformation)’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적 시민을 양성하는 인큐베이터이자 학교이고, 시민의 집합적 의사를 시스템에 투영하는 채널이나 플랫폼으로서 건강한 공론장을 만드는 것’이 정치학의 관심이다.
경제학은 행정학과 정치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실물재화를 대상으로 ‘공적인 것’의 여부를 논의하는 경향성을 보인다. 예컨대 그린벨트와 같이 사적 재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을 아울러 갖는 ‘공공재(common goods)’에 대한 학술적 관심 및 이러한 공공재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한 이론적 이해에 대한 욕구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한편 ‘부크홀츠(Buchholz)’는 세계화의 도래와 국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자본 및 초개인의 등장으로 국가 단위의 공공성 개념이 희석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국가 내의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공공성 판단’이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불법인 ‘낙태’는 개인의 영역인가 공적 영역인가? ‘국토개발계획을 둘러싼 사적토지에 대한 국가의 공용수용 필요성’은 개인의 재산권 문제인가? 국토라는 공적인 영역의 문제인가? 대기업은 공공성을 가지는가? 개인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은 사적인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Adams(1992)는 공공성에 대한 판단은 ‘행정에게 본질적으로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과업을 부여한다’고 말하였다. 즉 공공성에 대한 판단은 행정과 사회 간에 가치, 이익, 역할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발생시키는 원천 중의 하나이며, 본질적으로 ‘정치적 판단’이자 ‘실무적 판단’인 것이다.
Ⅲ. 현실적 연결고리: 정치체제 결정요인으로서의 공공성 판단
‘중앙정부(公, public)-공동체(共, common)(및 자치단체)-개인(私, private)(및 사적결사)’등은 대표적 정치 주제이다. 이들 세 가지 주체들 중에서 “누구에게” 지배적인 공공성(공적의무)를 부여하는가에 대한 판단에 따라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논의한다. 상대적으로 큰 공공성과 공적책무를 가진 주체가 있다면 또한 상대적으로 약한 자율성과 우선성을 가지게 되는 주체가 생길 것인데 이렇게 ‘주요 정치적 주체들을 대상으로 한 상대적인 공공성 판단’은 정치 체제의 특질을 결정하는 ‘이념적 결정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공(公, public)은 공공성 판단의 범위를 ‘국가’라는 주권적 영역 기준으로 바라보았을 때, 공적인 속성을 지닌 것들에게 부여되는 공공성 개념의 표지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정치적 주체는 ‘중앙정부’이며 ‘중앙정부’란 영토와 민족 등 정체성의 범주를 경계선으로 하는 공식적 정치집단인 국가를 대표하는 독점적인 기구이며 정치적 실체이다. ‘중앙정부’는 국가라는 영역적 범위 내에서 공공성 판단 및 관리의 주체로서 독점적인 지위를 지니는데, 한 국가가 국가 단위의 공(公, public)에 가장 높은 우선성을 부여하고, 나머지 주체에 상대적으로 낮은 우선성을 부여하는 경우 해당 국가는 집권적인 ‘단방제 정치체제’를 구성원리로 삼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는 국민의 집합적인 일체감을 강조하고, 국가의 구성원을 서로 묶어주는 ‘국가적인 것’의 중요성을 초점에 두게 되기 쉽다. 일본이 중시해 온 ‘국가의 효율적인 근대화를 위해 국가의 일체감 있는 조직화 및 이를 통한 자원의 효율적 동원을 모색함’이라는 ‘선공후사’의 이념이나 산업화시대 우리나라의 모습이 예가 되겠다.
둘째, 공(共, common)은 공공성 판단의 범위를 ‘공동체’와 같이 국가 내부의 부분 집합들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공적인 속성을 지닌 것들에게 부여되는 공공성 개념의 표지이다. 가령 ‘마을공동체’ 구성원의 공유자산이나 공유재원 등에 대하여 부여되는 공공성 개념을 예로 들 수 있다. 공유재원은 공동체의 범위에서는 공공성(공적의무)을(공적의무) 지닌다. 공(共, common)의 영역은 이렇게 어떠한 스케일로 대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공적은 속성을 갖기도 하고, 사적인 속성을 갖기도 하는 등 유동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특징이 있다.
국가가 국가 내부의 부분집합으로서 다양한 ‘공동체들’에 가장 높은 우선성을 부여할 때 해당 국가는 분권적인 정치체제를 구성원리로 삼을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유의할 점은 공동체가 지닌 공에 대한 절대적 규범적 우위성을 부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공공성에 대한 교조적 태도를 주의해야 한다. 국가산업 유치처럼 한 지방이 다른 지방과 이익을 두고 경합할 때에는 이익집단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셋째,(私, private)는 개념적인 의미에서 공(公, public)과 공(共, common)등 공적의무(혹은 공적책무)가 부여되지 않는 자율과 자유의 상태를 의미한다. 사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입장을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이 관점에 따르면 ‘정부나 공동체와 같은 공적인 것들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공적인 것의 우선성을 최소한으로 제약해야 한다. 국가가 사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이념적 스탠스를 지닐 경우 해당 국가는 작은 정부의 방향성을 지닌 정치·정부체계를 구성원리로 삼게 될 것이다.
Ⅳ. 현실적 연결고리: 맥락에 따른 공공성 판단의 변동 및 정치적 공방
대상에 대한 공공성 판단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항구적이지 않으며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늘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된다. 이를 ‘공공성 판단의 사회적 구성’이라고 정의한다.
왜 공공성 판단은 지속적인 운동력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가?
첫째, 상이한 국가, 문화, 시대에 따른 맥락성이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인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 미국에서는 ‘오픈컨테이너법’에 의해 주류를 보이도록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불법행위가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주가 공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역사, 문화적 맥락이 있다.
한 국가 내에서도 시대적 가치의 변동에 의해 공공성의 범위가 달라지는데. 가령 한국에서 “교육”에 대한 공공성의 판단이 역사적, 정권별로 변동해 수월성과 평등이, 보편 자아와 특수수성이 대립해 왔으며 이렇게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동하는 가치판단에 맞추어 ‘공공성’의 판단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둘째, 공공성의 판단은 ‘권력구조의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 지배적인 권력과 이해관계는 정치적 공방을 수반하는 공공성 판단에 투사되어 판단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데, 개발도상국에서의 ‘파업’은 ‘정치적 행위’가 되어 ‘공적인 것’으로 대하는 반면, OECD국가들은 이를 ‘경제적인 협상’으로 이해하고 ‘사적인 것’으로 대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로 권력구조에 따라 공공성의 판단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공공성의 판단은 ‘사회적 외부성’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외부성이랑, 공공성의 판단 결과가 기존의 가치와 이익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가정’은 사적 개인이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고 사적 역량을 축적하는 사회체계 내 사적 단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어떠한 가정의 내부에서 인권 침해적인 폭력이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해당 가정은 형법적인 판단의 대상으로 사회에 ‘공공성을 지닌 채 출현’하게 된다. ‘인권 침해적인 폭력’이라는 사건의 발생을 기준으로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개념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공인, 언론의 보도, 대기업 등 어떠한 대상의 ‘공공성 판단’에 있어서 ‘영향력과 파급력’이라는 중요한 동인으로 즉 사회적 외부성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법의 변화는 환경의 변화보다 순발력이 뒤떨어지기 마련이므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영역들에 대하여 공법과 사법으로 구분하고 정의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실효하지도 않다. 따라서 이러한 변동성은 행정에게 다음과 같은 역할을 부여한다.
첫째, 행정은 법이 세세하게 정해놓지 않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경계’의 현장에서 ‘공공성 판별’을 수행하는 권위 있는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둘째, ‘공공성 판별’은 자주 공익과 사익 간의 상충과 연관되며,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을 요청하게 되므로 행정은 이러한 현장에서 가치판단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즉 행정은 권위 있는 주체로서 공공성을 “판단”하고 “수행”해야 한다.
Ⅴ. 결론 및 제언
이 논문은 모호하며 논쟁적인 ‘공공성’의 개념에 대한 수월한 이해를 도모하는데 주된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공공성의 개념에 대한 다학제적인 논의와 이를 바탕으로 공공성 개념이 현실문제와 어떠한 연결고리를 갖는지에 대해 논점들을 제안하였다.
공공성 판단이 기존의 가치와 이익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논증하였고, 공공성에 대한 판단은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와 장소, 권력 구조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동하는 맥락성을 지닌 것으로 정의하였다. 또한 공공성 판단의 권위 있는 판단 주체로서 행정의 독자적 역할과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부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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