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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히는 수면 12시가 지나고 날이 바뀌었다. 나는 바로 잘 수 있을 것인가.. 천천히 몸을 뉘어본다. 핸드폰도 보지 않는다. 일부러 숨을 크게 내쉬어 보기도 한다. 가끔 낮에 한 번씩 졸린 적이 있다. 그러면 아니야. 저녁에 잠 못 자니까 참아야 해. 그랬었다. 지금은 아니다. 내가 졸리다고? 그럼 시간과 장소가 문제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잠을 청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예민하고 마음이 여리다는 것을 험란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처음에는 단지 스트레스가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젊은 육체로 버티다 터진 것은 뒷목이 무거워지면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이다. 당시 생소했던 긁기, 귀찌르기 같은 민간요법에 신경과 등을 다니며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다가 결국 당시 하던 사..
연인 처음에는 이성적인 두근거림과 잘 보이고픈 설렘,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의 대상. 여행을 갈 때 나는 “손잡고 걸을까?”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친구사이. 분노 포인트와 유머 포인트가 비슷해서 말이 잘 통하는 유쾌한 친구. 짧지 않은 시간 꾸준한 모습을 보면 감탄이 나오기도 하는 존경하는 사람. 서러운 일을 당했을 땐 행정적인 처리와 분노를 해주는 서로의 보호자이자 뒷배. 협력적 팀원. 핸드폰 그만 보고 어깨를 펴라는 둥, 비타민을 먹으라는 등 잔소리꾼. 가끔은 자극도 받고, 샘도 나는 것을 보면 비슷한 연배의 경쟁자이자, 상대가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상대가 성공하면 나도 뿌듯한 것을 보면 분명 연인 사이.
뭐라도 남기리 주말, 빗소리 천둥소리가 대단하다. 모자를 눌러쓰고 집 앞 작은 커피숍에 커피를 사러 갔다. 콧잔등으로 살짝 떨어지는 비에, 내가 비가 맞고 싶었구나 생각이 된다. 테이블 위 갓 볶은 커피의 진향 향은 제법 시간이 걸려 나온 라떼 한 잔을 기분 좋게 기다리게 만든다. 커피를 들고 앉은 프로그램 속에도 조용하고 비가 내린다. ‘뭐라도 남기리’ 김남길, 이상윤이 바이크를 타고 이동한다. 각자의 내면에 깃들여 있는 어떤 마음. 나를 찾는 과정을 잔잔하게 풀어 나간다. 내가 본 두 여행자의 여행지는 단순함의 깨닳음 땅끝. 스님과 함께 마음속 등불은 켠다 각자 답을 찾아본다.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만행. 다니면서 깨우치고 뉘우치는 것. 여행의 의미를 찾아 본다. 아무도 쉽게 대답할 수..
응원 돌아보니 혼자이다. 지금까지 자의적 타의적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그 흐름에 휩쓸려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을 잊은 건 아닌지. 사회 관계망 속의 나는 누구일까? 당장에는 주는 사람과 뺏는 사람을 알 수 없고 언제나 걸림돌은 나 자신이었다. 쌓아 두었다고 생각했던 관계 마일리지도 없다. 조용히 내가 없어져도 하나 이상할 게 없을 것 같고, 그렇게 없어져도 나 역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계산하지 않고 살았던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래서 철들지 않았던 것인지, 남이 바라보는 시선의 틀 안에서인지... 누군가를 대신해 아팠으면 좋겠다고 든 생각, 내가 다 잘못했다고 ..
평범한 무능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회피유형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저 자리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답답해하는데 문제는 마치 나만 답답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뿌리 깊은 부정적 관행 속에 숨는 사람들. 내가 결정하고 움직이고 책임지는게 당연한 개인사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원래 성격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격 없는 자가 자리에 앉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걸 보는 게 힘들다. 크던 작던 자리 만큼의 책임과 할 일이란 게 있는 것인데, 내가 그 책임과 할 일을 너무 엄격하게 재고 있는 건 아닌지까지 자책하게 된다. 그래 개미도 30%만 일한다던데... (그렇지만 사람이 개미도 아니고... 각 자리마다 분명 그 자리에 고용되든 선출되던 자격조건이 있었을텐데?) 그리고 그들은..
공격적 국가주의의 결정판 소분홍 얼마 전 중국 대학졸업생들이 시체처럼 축 늘어진 졸업사진을 올리는 것이 유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와... 중국 대학생이? 그 소분홍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사였다. 과한 애국주의로 똘똘 뭉쳐져서 마치 자기나라 중국을 덕질하듯 좋아함을 표시하는 중국 N세대들의 시체졸업사진 유행은 코로나 팬더믹 2년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된 사건이다. 2016년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반중국주의인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되자 집단적으로 홈페이지에 달려가 공격성 댓글을 단 사건으로 소분홍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1989년 천안문 사태이후 위기를 느낀 중국공산당이 작정하고 애국주의교육을 실시하여 그 교육을 받고 자란 1990년대 이후 세대로 중화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다들 2~3년전 김치고 한복이고 뭐든지 ..
후쿠오카1 (2022. 12.)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후쿠오카를 처음 방문한 것은 작년 12말. 나는 한 해의 마무리를 후쿠오카에서 했다. 못키리 스타일을 경험하고픈 큰 뜻을 품고.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첫 끼니로 오코노미야끼를 시켜 두고 생맥주를 마셨다. 토리아에즈나마비루! (일단 생맥주!) 일본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단 생맥주! 흉내 내었는데, 살짝 땀을 흘린 상태에서 생맥주의 목 넘김이란...... 아직 후쿠오카를 둘러보지도 않았지만, 정말 ‘오길 잘했다’란 만족감이 들었다. 유명 관광지도 좋지만, 현지의 공기를 더 느껴보고 싶어 숙소 근처 골목들을 빠른 걸음으로 훑고 다녔다. 그러다 눈에 띈 오레노다이도코로(내부엌)라는 간판. 도무지 안을 알 수 없는 작은 이자카야 앞에서 두어 걸음을 앞뒤로 ..
가을 들녘이 아름다운 안동 물돌이 마을 유교의 본고장 안동에 갔다. 정확히는 안동 하회마을을 보러 갔다..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도산서원에 먼저 들렸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을 기리기 위해 선조 7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의 뒤편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는데, 1575년 선조로부터 우리가 아는 그 떡 써는 어머니 이야기의 한석봉이 쓴 ‘陶山(도산)’이라는 편액을 받았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면 강 건너 섬처럼 보이는 언덕 위에 시사단이 보인다. 정조가 이황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여기 근처에서 과거 시험을 치렀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비석단이다. 안동댐을 만들면서 단을 10m 높이로 쌓아서 건물과 비석을 옮겨 왔는데, 꼭 나 홀로 섬이 있는 것 같다. 서원에 도착하여 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