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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에 선 듯 불안감을 주는 AGI 어느 날 문득, 내가 서 있는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조용하지만 거대하게, 천천히 보이지만 실은 맹렬하게. AGI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변화 앞에서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두려움을 느낀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한 도구쯤으로 여겼다. 뉴스에서 AI가 언급될 때마다 '그런가 보다' 했고, 자율주행차나 주식 시장의 변동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러나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전문가의 영역에서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어온 이 힘은 지금까지의 모든 틀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AGI 시대가 온다고 한다. 그것도 곧.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하는 범용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말한..
금목서 일본 어느 사찰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났던 금목서. 은목서도 함께 피어 있었다. 그때는 그저 지나쳤다. 내 코끝을 스친 것이 기억의 뿌리를 내릴 줄은 몰랐다. 이제 금목서는 숨은 무언가를 찾는 놀이처럼 나에게 온다. 낙엽이 떨어진 공원길, 어디쯤에선가 향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멈춘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린아이처럼, 보물찾기하듯. 보이지 않는 한 그루가 이토록 넓게 제 몸을 푼다는 게 신기하다. 향기는 방향을 갖지 않는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데 어디에나 있다. 머릿속 구겨진 생각들의 주름 사이로 스며들어 주름을 편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것들이 멀어진다. 가을임에도 노랗지도 빨갛지도 못한 단풍이 그냥 누런빛으로 떨어진다. 흐리고 비 오는 날들이 물들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강변도 공원도 아..
시간이 쌓이는 방식 - '은중과 상연’ 긴 연휴에 넷플릭스를 켰다. '은중과 상연'. 아역배우 연기가 좋다는 말에 시작한 몰아보기는 오래 이어졌다. 이 드라마는 1990년대 초등학교에서 만난 두 소녀가 마흔을 넘기기까지, 삼십 년의 시간을 가로지른다. 류은중과 천상연. 두 사람은 친구였다. 동경하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헤어졌다. 함께 웃고 울고, 서로를 베고, 다시 만나고 헤어졌다. 사랑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점이 바뀐다. 은중에서 상연으로. 화자가 바뀌면 같은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방금 전까지 이해했다고 생각한 장면이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다시 들리면 가슴이 조여든다. 이런 기법을 쓰려면 배짱이 있어야 한다. 잘못하면 산만해지고, 자칫하면 기교만 남는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확신에 차 있다. 초반의 축은 상연 남매다. 상연..
책임 책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나를 향한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두 책임의 무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어깨를 짓누른다. 나를 향한 책임은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나는 벌레처럼 작아진다. 자괴감이 온몸을 감싼다. 반대로 그 구성을 다하면 비로소 인간 구실을 한 것 같은 안도가 찾아온다. 두려움이 책임감과 맞물리면 일의 시작이 망설여진다. 막상 시작하면 잘 해내지만, 그 전에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에너지를 양껏 쓴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무력해지는 것만 같다. 남이 책임감 없이 행동할 때는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한마디 던지고 말 수 있지만, 내가 그러면 견딜 수 없..
부조리, 세상의 맨 얼굴 국회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들의 태도, 공무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비단 사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의 근저에 깔린 부조리라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이치나 도리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기대에 등을 돌린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이가 좌절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뻔뻔하게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이 세상의 기본 원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부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치에 맞게 살려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그..
시간의 무게 아버지는 19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으셨다. 그때의 회복은 가족 모두에게 기적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킨슨병이 찾아왔고, 최근 들어 신장까지 온몸이 조금씩 더 불편해졌다. 이제는 작은 동작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균형이 흐려지며,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신다. 이런 현실을 보는 일은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경화로 시작된 아픔, 30년간 한 움큼의 약을 먹는 것도 지겹다고, 잦아진 응급 상황과 예상되는 앞날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본인의 의지를 말씀하신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체념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선택권을 지키려는 간절함 같았다. 삶이란 것이 결국 시작과 끝 모두 타인..
몰로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 내 옆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는 공허함.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막막함 속에서 베케트의 몰로이를 펼쳤다. 나와 같은 길 잃음 속에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몰로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사랑 때문인지, 의무감인지, 그도 자신이 모른다고 한다. 자전거를 잃고 다리마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계속 나아간다. 기어서라도. 2부의 모랑은 더욱 기이하다. 몰로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몰로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찾아 헤매면서도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한다. 마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찾고 있으면서도..
삼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은 단순한 정치 운동을 넘어 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든 대참사였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이 혁명은 '구습타파'라는 명목 하에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수많은 서적과 문화재를 불태웠으며, 전통 문화의 맥을 끊어놓았다. 홍위병이라 불린 젊은이들은 스승을 고발하고, 이웃을 밀고했으며, 가족마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무수한 지식인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농촌으로 추방당했다. 이 10년은 중국이 근대화의 길에서 크게 뒤처지게 만든 암흑기였고,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중국 사회 깊숙이 남아있다. 넷플릭스 삼체는 바로 이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물리학자 예원의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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