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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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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 건 뭘까? 니체의 ‘우상의 황혼’에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남의 가치에 수동적 따름이 아닌 자기 삶의 주체적 주인이 되어야 하며, 기존의 틀과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는 태도의 중요성과,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과정으로 배움을 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저마다 다른 사람이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낯설어하기도 한다. 각자에 맞는 방법과 속도를 찾아 배워 나간다. 계속 하다보면 점차 나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성장해 나간다.채인선 동화작가의 글 ‘배운다는 건 뭘까?’ 필사의 마음으로 적어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채인선 글. 윤봉선 그림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뭘..
빨간머리 앤 온 세상 아줌마, 아저씨들 카톡 프로필이 지브리풍으로 바뀐다 싶더니.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개봉을 했다. ‘어? 본 것 같은데?’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 당연히 본 것 같은데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아 넷플릭스를 찾아보았다.‘아, 역시 지브리.. 지브리 감성 그대로.’그리고 알고리즘의 힘... 한동안 지브리가 떠서 지브리를 보았다. 나우시카, 라퓨타, 그리고 빨간머리 앤.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친절하지 못한 번역. 거기에 흑백 삽화조차 몇 장 없었던 두꺼운 세계명작은 지금은 애써 후려치지만 사실 나의 가장 내밀한 친구였다. 그 명작을 읽고 잠이 든 밤에는 ‘그녀가 말했다.’ 따위의 번역은 끼어들 틈 없이, 나는 앤이었고, 걸리버였고 달타냥이었다. 꿈 속에서 삽화 없이도 능히 그릴..
개바우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일몰 후 가로등이 켜진 공원을 걷다가 춘식이를 만났다. 나를 믿고 무게를 완전히 나에게 기대는, 팔랑팔랑 귀에 입이 볼록 나온. 덩치는 크지만 분명 겅중거리는 걸음이 아기가 분명하다. 양산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반려동물 손그림을 우연히 봤다. 사장님 따님이 그리신다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바우를 찾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나는 바우라는 단모 치와와를 8년 키웠다.우리 바우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 왕국의 12왕자 중 11번째 왕자로 왕족의 성인 “개”씨, 개바우이다. 개바우는 왕족답게 침착하고 헛짖음이 없는 의젓한 강아지였다. 혹자는 겁이 많다고 겁돌이라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겁이 많은 개는 주인 뒤에 숨어 맹렬하게 짖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지금 요즘은 시간을 자주 놓친다. 분명 저녁일 텐데도, 바깥은 아직 한낮처럼 밝다.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혹은 하루가 늘어난 것 같은 착각 속에 머문다. 잠깐, 정말 잠깐 시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한여름이 되면 익숙해지겠지. 흐린 날이 끼면 그 착각은 더 짙어지고,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시간은 더 조용히 스며든다. 이렇게 짧은 적응의 틈이 지나고 나면, 숨이 턱 막힐 무더위가 곧 찾아오겠지. 환한 빛이 만들어낸 시간착각의 마법이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빛이 시간을 속이는 그 짧은 순간 속에서.
분홍신 1948년 발매된 영화 분홍신은 아카데미 미술상, 음악상을 받은 작품으로 반쯤 미친 고흐나 괴팍한 머리 모양의 아인슈타인의 인기를 마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규정짓듯 인간의 예술에 대한 집착을 당시의 편견으로 그린 영화다.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동화 모티브 그대로 일차적인 대신 영화는 주무대인 안데르센의 ‘분홍신(빨간구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엄청난 실험이었을 영화 속 15분이 넘는 순수 발레 공연 장면은 당시에 쓸 수 있는 모든 기술과 화려함. 부릴 수 있는 모든 사치를 부린 무대는 색채, 미장센, 음악, 동작이 놀라울 정도로 환상적이어서 스토리 개연성과 관계의 불편함은 잠시 접어두어도 될 정도이다. 15분의 공연으로 영화 전체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는데, 스포도 아닌 스포를 ..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체육관 선거가 있었던 시대, 민주주의가 미완의 상태였던 그 시절을 우리는 종종 비판한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부모님들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 땅을 오늘날의 대한민국으로 만들어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대 사람들의 치열한 삶과 노력을 존중한다. 어르신들은 대체로 보수를 지지하고, 젊은 세대는 진보를 선호한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2030세대 중에도 현실적 보수 성향을 보이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일부 기성세대도 변화에 열린 모습을 보인다. 정치 성향이 단순히 나이로 결정되는 시대는 지났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통일이 당연한 숙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무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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