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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앤하이드 170분의 여정이 끝나고도, 커튼콜의 환호성보다 더 오래 내 가슴을 두드린 건 무대 위 한 사람의 두 얼굴이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지킬 박사와 폭력과 쾌락에 탐닉하는 하이드.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뮤지컬이 다루는 선과 악의 이중성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나쁘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안의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며, 한쪽을 없애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다. 악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속 깊이 뿌리내린 일부임을 보여준다. 하이드는 사회가 억압해 온 욕망, 분노, 이기심의 화신이다. 그렇다면 나의 하이드는 무엇일까? 무대를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이 영화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가 아니라, 확실히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이다.내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소탈하고 모범적인 앤에게 그 이데아가 있다면, 지금 2-30대는 해리포터, 찰리의 초콜릿 공장, 포켓몬이 근원이지 않을까? 소설 마틸다에서는..부모에게 무관심을 넘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마틸다는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억압을 하는 교장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지적호기심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 몸으로 실천하는 정의감으로 대응한다.그러나 그러한 용기는 초능력과 천재성이라는 특이성에 가려져 기존의 틀을 깨려면 마치 특별하고 영웅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물론 이건 지금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는 마틸다이다.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의 환경을 깬다는 것은 초능력이..
천박한 독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나는 당선 사실 그 자체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조롱이며 우리나라가 여전히 후진국형 권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극의 증거라 생각했다.그렇지 않은가? 중학생 토론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 RE100도 모르는 무식함과 손바닥 王 자, 틱이 의심되는 도리도리, 아침 드라마를 보는 듯한 후보 부인의 사과 영상.그래서 윤설열 개인은 비호감이지만 찍던 당 그대로, ‘이번엔 정권을 뺏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그 청백전의 방식대로 투표하여 유권자의 주권행사방식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아니.. 대의까지는 아니라도 나 개인에게 분명 불이익을 줄 것 같은 사람에게 투표를 하다니... 바보 아니야?’ 하고 말이다. 처음부터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안하겠다.’가 공..
침팬지의 제국 인간과 유전자 차이가 단 2%라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 침팬지.영역 동물이자 사회적 무리를 만드는 정말 인간 같은 친척.“침팬지”라는 말에 “인간”을 넣어도 그대로 느껴지고 관찰되어서 놀라운 다큐멘터리 침팬지 왕국을 꼭 소개해서, 이 다큐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려 공감받고 싶은 나는 침팬지 같은 사회적 동물.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Kibale National Park)의 응고고(Ngogo) 지역 숲 속에서 집단을 형성하며 가족, 종족 간의 정치, 영역 다툼의 모습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침팬지의 제국’은 25년 동안 과학자들과 현장 조사 인력이 침팬지 무리와 함께 생활하며 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생 침팬지 집단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실화 기반 다큐멘터리이다. 다큐의..
배운다는 건 뭘까? 니체의 ‘우상의 황혼’에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남의 가치에 수동적 따름이 아닌 자기 삶의 주체적 주인이 되어야 하며, 기존의 틀과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의심하는 태도의 중요성과,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닌 삶을 긍정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성장하는 과정으로 배움을 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저마다 다른 사람이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기도, 낯설어하기도 한다. 각자에 맞는 방법과 속도를 찾아 배워 나간다. 계속 하다보면 점차 나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성장해 나간다.채인선 동화작가의 글 ‘배운다는 건 뭘까?’ 필사의 마음으로 적어본다. 배운다는 건 뭘까? 채인선 글. 윤봉선 그림 배운다는 건... 배운다는 건 뭘..
빨간머리 앤 온 세상 아줌마, 아저씨들 카톡 프로필이 지브리풍으로 바뀐다 싶더니.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개봉을 했다. ‘어? 본 것 같은데?’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 당연히 본 것 같은데 내용이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아 넷플릭스를 찾아보았다.‘아, 역시 지브리.. 지브리 감성 그대로.’그리고 알고리즘의 힘... 한동안 지브리가 떠서 지브리를 보았다. 나우시카, 라퓨타, 그리고 빨간머리 앤. 깨알같이 작은 글씨에 친절하지 못한 번역. 거기에 흑백 삽화조차 몇 장 없었던 두꺼운 세계명작은 지금은 애써 후려치지만 사실 나의 가장 내밀한 친구였다. 그 명작을 읽고 잠이 든 밤에는 ‘그녀가 말했다.’ 따위의 번역은 끼어들 틈 없이, 나는 앤이었고, 걸리버였고 달타냥이었다. 꿈 속에서 삽화 없이도 능히 그릴..
개바우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일몰 후 가로등이 켜진 공원을 걷다가 춘식이를 만났다. 나를 믿고 무게를 완전히 나에게 기대는, 팔랑팔랑 귀에 입이 볼록 나온. 덩치는 크지만 분명 겅중거리는 걸음이 아기가 분명하다. 양산 어느 카페에 들렀다가 반려동물 손그림을 우연히 봤다. 사장님 따님이 그리신다고. 오래된 사진첩을 뒤져 바우를 찾았다. 사진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대하며 기다렸는지… 나는 바우라는 단모 치와와를 8년 키웠다.우리 바우는 강아지, 그러니까 개 왕국의 12왕자 중 11번째 왕자로 왕족의 성인 “개”씨, 개바우이다. 개바우는 왕족답게 침착하고 헛짖음이 없는 의젓한 강아지였다. 혹자는 겁이 많다고 겁돌이라 놀리기도 했으나, 사실 겁이 많은 개는 주인 뒤에 숨어 맹렬하게 짖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지금 요즘은 시간을 자주 놓친다. 분명 저녁일 텐데도, 바깥은 아직 한낮처럼 밝다. 시계를 보기 전까지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혹은 하루가 늘어난 것 같은 착각 속에 머문다. 잠깐, 정말 잠깐 시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한여름이 되면 익숙해지겠지. 흐린 날이 끼면 그 착각은 더 짙어지고,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시간은 더 조용히 스며든다. 이렇게 짧은 적응의 틈이 지나고 나면, 숨이 턱 막힐 무더위가 곧 찾아오겠지. 환한 빛이 만들어낸 시간착각의 마법이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빛이 시간을 속이는 그 짧은 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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