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1) 썸네일형 리스트형 책임 책임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나를 향한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두 책임의 무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어깨를 짓누른다. 나를 향한 책임은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다.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나는 벌레처럼 작아진다. 자괴감이 온몸을 감싼다. 반대로 그 구성을 다하면 비로소 인간 구실을 한 것 같은 안도가 찾아온다. 두려움이 책임감과 맞물리면 일의 시작이 망설여진다. 막상 시작하면 잘 해내지만, 그 전에 머릿속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에너지를 양껏 쓴다. 책임을 완수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무력해지는 것만 같다. 남이 책임감 없이 행동할 때는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 한마디 던지고 말 수 있지만, 내가 그러면 견딜 수 없.. 부조리, 세상의 맨 얼굴 국회 입법청문회에 출석한 검사들의 모습을 보며 얼굴이 굳어지는 나를 느꼈다. 그들의 태도, 공무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자신들의 조직 논리 외에는 그 어떤 도덕적 잣대도 무시하는 듯한 모습은, 비단 사법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세상의 근저에 깔린 부조리라는 원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이치나 도리대로 굴러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그 기대에 등을 돌린다. 정직하게 노력하는 이가 좌절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뻔뻔하게 특혜를 누리는 모습은 일상다반사다. 어쩌면 이 세상의 기본 원리는 공정함이 아니라 부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치에 맞게 살려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그.. 시간의 무게 아버지는 19년 전 간이식수술을 받으셨다. 그때의 회복은 가족 모두에게 기적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파킨슨병이 찾아왔고, 최근 들어 신장까지 온몸이 조금씩 더 불편해졌다. 이제는 작은 동작조차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균형이 흐려지며,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존엄까지 겹쳐 고통스러워하신다. 이런 현실을 보는 일은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간경화로 시작된 아픔, 30년간 한 움큼의 약을 먹는 것도 지겹다고, 잦아진 응급 상황과 예상되는 앞날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신 아버지는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단호하게 본인의 의지를 말씀하신다. 그때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체념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선택권을 지키려는 간절함 같았다. 삶이란 것이 결국 시작과 끝 모두 타인.. 몰로이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 내 옆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는 공허함.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막막함 속에서 베케트의 몰로이를 펼쳤다. 나와 같은 길 잃음 속에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몰로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위치를 모른다. 어떻게 여기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사랑 때문인지, 의무감인지, 그도 자신이 모른다고 한다. 자전거를 잃고 다리마저 아파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계속 나아간다. 기어서라도. 2부의 모랑은 더욱 기이하다. 몰로이를 찾으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몰로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찾아 헤매면서도 그 사람이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한다. 마치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찾고 있으면서도.. 삼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은 단순한 정치 운동을 넘어 한 문명의 근간을 뒤흔든 대참사였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이 혁명은 '구습타파'라는 명목 하에 지식인들을 탄압하고, 수많은 서적과 문화재를 불태웠으며, 전통 문화의 맥을 끊어놓았다. 홍위병이라 불린 젊은이들은 스승을 고발하고, 이웃을 밀고했으며, 가족마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무수한 지식인들이 감옥에 갇히거나 농촌으로 추방당했다. 이 10년은 중국이 근대화의 길에서 크게 뒤처지게 만든 암흑기였고, 그 상처는 오늘날까지도 중국 사회 깊숙이 남아있다. 넷플릭스 삼체는 바로 이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물리학자 예원의 아버지가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에게 맞아 죽는 장.. 꽃무릇 공원 음지에 꽃무릇이 보인다.진한 홍색의 꽃이 9월, 추석 무렵임을 알려준다.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음을. 꽃무릇이 군집을 이루기 시작하면늘 다니던 길도 황록색 느티나무의 유혹을 받게 되고밝고 가벼운 옷들도느티나무처럼 깊은 색을 입고 싶어진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 날도하동의 동행과 쌍계사 꽃무릇의 기약도 떠오른다. 이런 날은유지해 오던 마음의 기준이 낮아져결심과 다른 생각도 행동도 하게 된다. 이럴 때 누군가 꽃대만 올라와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무릇처럼“괜찮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170분의 여정이 끝나고도, 커튼콜의 환호성보다 더 오래 내 가슴을 두드린 건 무대 위 한 사람의 두 얼굴이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지킬 박사와 폭력과 쾌락에 탐닉하는 하이드. 서로 닿을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 사람 안에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뮤지컬이 다루는 선과 악의 이중성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 때로는 착하고 때로는 나쁘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안의 선과 악이 항상 공존하며, 한쪽을 없애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다. 악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속 깊이 뿌리내린 일부임을 보여준다. 하이드는 사회가 억압해 온 욕망, 분노, 이기심의 화신이다. 그렇다면 나의 하이드는 무엇일까? 무대를 바라보며 깨달은 것은 .. 영화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 이 영화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가 아니라, 확실히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이다.내 어린 시절의 상상력이 소탈하고 모범적인 앤에게 그 이데아가 있다면, 지금 2-30대는 해리포터, 찰리의 초콜릿 공장, 포켓몬이 근원이지 않을까? 소설 마틸다에서는..부모에게 무관심을 넘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마틸다는 폭력적이고 획일적인 억압을 하는 교장선생님과 어른들에게 지적호기심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용기, 몸으로 실천하는 정의감으로 대응한다.그러나 그러한 용기는 초능력과 천재성이라는 특이성에 가려져 기존의 틀을 깨려면 마치 특별하고 영웅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물론 이건 지금 어른의 눈으로 다시 읽는 마틸다이다.내가 조금 더 어렸다면 나의 환경을 깬다는 것은 초능력이.. 이전 1 2 3 4 ··· 13 다음